
§ 개쩌는 로그에서 이어집니다 https://posty.pe/nvv8v3 https://posty.pe/ji0oa4
§ 주의: 소중한 사람의 죽음, 이별 및 사별 소재, 정신 붕괴 및 우울함 등에 대한 심리적 묘사, 약한 폭력 등
§ 전체적으로 우울한 글 주의. 퇴고 크게 없음. 비문 및 급전개 주의. 22천자 정도.
§ 제목은 심규선 님의 '이것은 아마 마지막 꽃잎' 노래 가사에서 따왔습니다.
§ 언제나 황금빛 소나기로 내릴 너에게. 제휘야 너는 갓캐란다.
어떠한 이별은 잔인함과도 비슷한 색을 띠고 있다.
"날이 좋네."
그러니 오늘은 아니기를. 소년은 반쯤 휘청이듯 막사로 다가갔다. 꼭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평소의 소년이었다면 망설임도 없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관심도 없다는 듯이 손을 뻗었을 테다. 팍 소리가 나게 막사를 걷고, 성큼성큼 걸음하며 냅다 소리를 내질렀을 테다. 내가 8시까지 나오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대장 지금 당신이랑 있죠! 당장 안 튀어나와?
그러나 소년은 그러지 못 했다. 손을 뻗지도 않은 채 손끝으로 막사의 천자락을 만지작거릴 뿐.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 하고 망설이는 것처럼.
그랬다. 소년은 망설였다. 두려웠으니까. 그의 부재를 통보받은 후로, 줄곧. 그리고 지금까지도.
혹시 오늘이 그날일까. 이 천을 걷으면 네가 무책임하게도 남기고 간 여백만이 나를 반기지는 않을까. 소년은 최근 들어 그것이 퍽 두려웠다. 남겨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소년은 이제야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겨짐은 언제든 두려운 것이나, 이미 사랑하기로 약속한 격통이라면 더욱 그러할 테다. 얼마나 아픈지를 알고 있을 두려움보다 큰 것이 있을까. 그래서 소년은 구태여 그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 두려움마저 그가 만들어낸 것이었기에. 그, 최초의 여백의 창시자일 이가.
팍.
그 망설임을 잘라낸 것은 난데없이 들려온 천 소리였다. 소년은 제 손아귀에 있던 것의 부재를 느리게 목도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앞에서 뭐 하냐? 아, 나오라는 거지? 알았다, 알았다고, 안 까먹었다. 회의 시간?"
그였다. 흘러가는, 그러나 고여 있을 모든 것의 원흉.
아, 그렇지. 그라면 이미 제 존재를 알고 있었겠지. 소년은 그 당연한 사실을 느리게도 떠올렸다.
당연히 알았겠지, 제 발소리도, 숨소리도, 인기척도. 전부. 그럼에도 바로 천을 걷지 않은 것은. 꼭 무언가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군 것은.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아무 대꾸 없이 몸을 돌릴 뿐이었다. 소년은 마치 길을 잘못 들었다는 듯이, 아무 말도 없이 제 목적지로 돌아갔다. 할 수 있는 말은 없다는 것처럼. 소년답지 않게. 아니, 정확히는. 그들답지 않게.
그는 멀어지는 소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소년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저 머리를 한번 털어내고는, 그 역시 본래 도달해야 했을 목적지를 향해 소년의 뒤를 따라간 것이 전부였다.
그 역시 책임을 져야 했다. 그가 남길 무책임에.
비록 그 방법이, 역시 무책임하게, 소년에게 어떤 이유로든 손을 대지 못 하는 것이라고 해도.
*
새벽. 어슴푸레한 한기가 깃들어 차가운 꿈을 꾸고야 마는 시간.
잠을 자지 못 한 소년은 도리어 어떠한 비밀도 숨기지 않은 듯 고요했다. 최근 들어 소년이 평소 같지 않음을 알아본 이들은 그 평화를 폭풍전야의 침묵처럼 여기며 연신 불안한 낯을 했다. 그러나 비밀만이 깃든 단어 가득한 낯으로, 소년은 태평하게도 불침번을 자처했다. 오늘은 당번이 아니잖아요, 부대장. 그 만류를 만류하며 사람들을 곱게 들여보낸 소년은 이윽고 조용하게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 앉았다.
그렇게 소년은 한동안 가만히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밋빛으로 달아오른 불꽃은 반드시 꺼질 것을 각오한 듯이 맹렬하게도 타올랐다.
소년은 그 꼬락서니가 뒤지게 보기 싫다고 생각했다.
정말 싫다. 꼴보기 싫어. 타오르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무책임하기 짝이 없게 끝을 향해 내달리는 그것이 싫다. 남겨진 재는 어떻게 하라고. 한없이 바람에 걷어 차이고 비에 그저 짓밟힐 텐데. 알지도 못 하면서.
가만히 그를 응시하던 소년은 난데없이 손을 뻗어 옆에 놓아 두었던 잔을 덥석 쥐었다. 새벽은 생각보다 추워요, 부대장. 누군가 소년에게 내어주고 갔던, 따뜻하게 데운 물이 든 잔이었다. 이것도 따뜻하고 지랄이야. 소년이 생각했다. 아니, 중얼거렸다. 아닌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더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소년은 얼마 전 막사 안에 틀어박혔다가 사람들을 비명을 내지르게 하고야 말았다. 그러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소년은 언제나 모든 것을 홀로 삼키는 이였으므로. 멍하게 의미 없는 생각들을 이어내다 보니 어느 새 사흘 밤낮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그들은 전전긍긍하며 소년을 기다렸겠으나, 그 걱정이 무색하게 소년은 내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시간만을 허비했다, 그것만이 확실했다. 그러면 그 어떤 상실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소년은 간절히 도망치고 싶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러나 이번에도 도망칠 수 없을 테다. 소년은 그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소년은 단 한 번도 도망에 성공한 일이 없었기에.
그리하여 소년은 타오르는 모닥불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이것이 이별인가. 아니, 이것은.
공백이다.
아무것도 없는, 그리하여 결코 이해할 수 없을.
소년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상실을 사랑한다는 말인가? 상실을 남길 이를 사랑하기에, 그것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말인가? 애정만을 품은 단어로 구성된 소년은, 아니, 이전의 증오를 버리고자 애정만을 사랑하려 한 소년은, 이따금 그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품고야 말 것이라 해도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실,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 된다는 말인가?
소년은 충성을 알았고, 친애를 알았으며, 애정을 알았다. 그를 합하면 세상이 되었고, 호흡이 되었고, 사랑이 되었다. 그랬기에 소년은 그로 인해 완전해졌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불완전함으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한번 만들어진 세상은 이미 그 하나로 영원하다. 만들어진 사실은 변하지 않기에 사실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런데 왜 그곳에 구태여 공백이 생겨야 한다는 말인가. 소년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실은.
알고 있지 않았나?
그의 호흡을 항상 세아리는 것은 소년이었다. 소년은 그를 포함한 수많은 세상을 언제나 바라보는 것이 일이었고, 그를 기쁘게 여겼다. 불안전한 세상은 익숙한 심장 소리를 들으면 곧 핏빛 같은 불안함을 감추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런데도 정말 몰랐으려고. 소년이 그를 깨닫지 못 했으려고.
미미하게 모자란 숨, 조금은 피곤한가 여겼던 부족함, 들어본 일 없는 낯선 울림. 그 차이를 정말 몰랐을까.
귓가에서 마치 그가 묻는 것만 같았다. 들릴 일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알잖아. 이제는 도망갈 수 없어.
"아니."
소년이 대답했다. 아니, 중얼거렸다. 아니, 아니면.
소년은 부정했다. 그럴 리 없어. 아니, 전혀 깨닫지 못 했어, 아무것도 몰랐어.
그런데도 그는. 그래, 그가. 아니,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잖아.
머리를 부여잡은 소년의 시선이 느리게 움켜쥔 물잔을 향했다.
아니, 어쩌면.
어쩌면, 어차피.
어차피. 어차피 끝날 숨이라면.
차라리.
······.
"······하하."
소년이 웃었다. 공허했다. 비어버린 것 같았다. 소년은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떨군 소년이 웃었다. 아니.
소년은 망설임 없이 물잔을 들었다. 그리고 안에 든 것을 제 머리 위로 죄다 쏟아부었다. 찬물이 비처럼 내렸다. 소년은 춥지 않았다. 외려 달아오른 그 어떤 것이 차게 식는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다.
물이 소년의 뺨을 타고 뚝뚝 방울져 내렸다. 뺨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줄기는 꼭 눈물의 궤적을 닮았다. 소년은 생각했다.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리고······
밤이 깊었다. 불은 여전히 타올랐다. 소년이 젖은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밤을 적셨다. 어둠이 밝아오고 있었다.
*
소년은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부대 내의 모든 일은 마땅한 절차대로 문제 없이 돌아갔으나 사적인 상태의 소년은 이상하리만치 구경하기 어려웠다. 이쪽 루트는 쓸 수 없어요, 척후조가 먼저 다녀왔습니다. 언제? 제가 먼저 보내뒀어요, 어제 연락 받았습니다. 어제 너 막사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왔잖아. 새벽에 받았어요, 그보다 이쪽으로 이동하는 건 말인데요.
그쯤 되자 소년의 이상을 알아채지 못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가장 어린 분원조차 부대장이 이상하다며 울먹이는 시기였다. 그러나 소년은 그들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반드시 먼저 입을 여는 이였다. 그랬기에 모두가, 소년에게 당장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을 기대했다. 침묵을 지키는 소년 역시 그를 알았다. 모두가 소년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할 때가 오기를.
그러나 소년은 그 언제가 되든 입을 뗄 수 없을 터였다. 그것이 소년을 차분히 미치게 만들었다. 호흡을 하나씩 이어갈 때처럼 아주, 야금, 야금.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떠안자 검푸른 어둠과 비슷한 삶을 사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저편을 구경하며 돌을 던지는 시간이 퍽 오래도록 소년을 뚫고 지나갔다. 소년은 밤하늘을 빌어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어둠을 반으로 가르는 빛을 내는 별은 도리어 소년을 더욱 깊이 숨고 싶게 했다. 그러나 소년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망칠 수 없어 빛만을 소모하듯 태워내야만 했다. 본디 도망칠 수 없을 때는 별다른 것이 축나는 법이다. 소년은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야."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소년은 화를 내기라도 하듯 고개를 돌려 저편의 여명을 바라보던 참이었다.
문득 들린 소리에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제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의 부름이, 제 세상의 들판을 가득 메운 장미의 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잠도 안 잤냐?"
제휘였다. 도망쳐야 할 근본. 지겨우리만치 환한 별빛.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제가 그림자를 드리울.
"대체 뭐가 문젠데. 내가 괜히 얘기한 거냐? 그건 아닐 거잖아."
소년은 입을 다문 채 그를 올려다 보았다. 소년은 들린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의 눈은 어떠한 대답이라도 품은 듯이 서늘했다. 그 날이 선 시림은 꼭 분노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소년이 답이 없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드물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것이 낯선 듯 했다.
소년은 그를 알았다. 그가 자신을 믿는다는 것도, 그의 공백을 어떻게든 자신이 감당해주리라 믿는다는 것도 알았다. 아주 예전부터, 언젠가 가장 밝은 별빛이 지금까지 숨을 쉰 그 어떤 순간보다 밝게 타오른 후 영영 꺼져버릴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으리라는 점도, 아마 알 터였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소년도 알았다.
그리하여 소년은 이따금 궁금했다. 왜 자신일까. 아니, 그 대답을 이미 소년은 알았다.
소년은 이 잔인함의 이유를 묻고 싶었다. 아니, 그 대답을 이미 소년은.
소년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아니, 그 대답을 이미.
그러니 소년에게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알았고, 소년 역시 그를 알았기에. 이 불합리만이 기가 막히게도 합리적이었다. 그를 감내할 것은 소년 뿐이었고, 소년은 그 명제에 충실해야만 했다. 언제까지나. 그것이 옳았다. 그것만이 옳았다. 소년도 그를 알았다.
그랬기에 그것이 분했다. 소년은 억울했다. 왜 하필 나란 말인가. 대체 무엇을 내어주었기에 또다시 온 어둠을 제 손으로 불사르게 만든단 말인가. 그리고 소년은 그를 이해했다. 제 손으로 숨을 곳을 불사르는 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 무게를 견디겠나.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그것이 버거웠다. 아마 그 역시 그럴 테다. 그러니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그저 밤하늘 가운데에 박힌 가장 환한 별로서.
그게 씨발 제일 마음에 안 들어. 소년이 생각했다. 어? 그가 되물었다. 아마 입 밖으로 내뱉었나. 아니면.
탁.
흔히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타인의 뺨을 칠 때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는 살갗이 맞부딪쳤다기보다는, 무언가를 밀어내는 소리에 가까웠다. 그와 소년의 차이는 꽤 컸고 소년도 온 힘을 다하지 않았으니 아마 그는 아픔을 느끼지도 못 했을 터였다. 설령 다른 곳이 아프다 하더라도. 소년도, 그도 이미 그를 알았다.
그를 증명하듯 고개조차 돌아가지 않은 그가 소년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놀란 것도 같았고, 이미 짐작하던 것도 같았고, 묻는 것도, 걱정하는 것도 같았다. 소년은 화를 삭이는 것도 같았고, 슬퍼하는 것도 같았고, 복수하는 것도, 울부짖는 것도 같았다.
소년이 이를 갈듯 대답했다.
"기다려."
"······."
"내가 답을 줄 때까지 기다려."
"······."
"이기적인 새끼."
소년은 마치 상처입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백호 앞에서 그리 위협적인 속삭임이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구태여 더 묻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소년의 화를 더 돋굴 터라. 소년은 더 화를 내지도, 그를 다그치지도 않은 채 상처를 감추듯 등을 돌렸다. 어둠에 익숙한 그의 눈은 곧 소년의 손이 붉지 않음을 알아챘다. 아마 내일쯤 되면 푸르러질 텐데. 그러나 그는 소년을 잡지 않았다. 아마 그 푸름조차 소년에게는 무의미할 터라.
소년은 자신이 고뇌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 역시 그 사실을 알 터였다.
그러나 그는 소년의 고뇌 한 올 한 올을 뜯어먹을 수는 없었다. 소년은 그에 분노했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아, 모르겠다. 소년이 생각했다. 더는 울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 어둠을 가르고 별처럼 떨어지던 밤이었다.
가장 일찍 떠오른 별은 왜 가장 늦게 질 수 없는가.
왜 슬픔은 잠에 들지도 않는가.
인간은 왜 공백을 사랑하여 기어이 품어야만 하는가.
소년은 그 어떤 것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소년은 이윽고 검푸른 천막 위를 멍하게 응시하기를 그만두었다. 천 틈으로 들이친 성난 바람에 이미 꺼진 촛불은 잔뜩 어지러워진 책상 위로 처량한 그림자만을 드리웠다. 그를 지친 듯이 쳐다보던 소년은 곧 책상 위로 아무렇게나 쓰러지듯 엎어졌다. 허무하게 흘러간 시간 동안 잉크가 다 말라버린 서류가 버석하게 소년의 뺨 위를 적셨다.
소년은 과정도 없이 답을 알아냈다. 괴로운 호흡이 맥동처럼 이어질 때만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다. 눈물과 분노와 고통을 그저 흘려 보내야만 얻을 수 있는 답도 있다. 그러나 소년은 옳은지도 그른지도 모른 채 그저 날숨처럼 내뱉어진 답만을 주워 섬겼다.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음에도. 더 타오르는 것만이 고통스러워 소년은 끝내 도망치지 못 했다. 그 어떠한 옳은 과정도 거치지 않았기에 소년은 거창한 낙서 같은 답이나 얻어냈으리라. 이로 소년은 더는 어떠한 도망도 칠 수 없을 터였다. 그렇게 영영 괴로운 호흡만을, 불살라지듯 이어가게 될 터였다.
결국 모든 생은 언젠가는 끝이 난다. 소년은 이제 그를 이해해야만 했다. 어떠한 답이 되었든 그를 온전히 삼켜내야 했다. 그것만이 답이었다. 왜, 어떤 연유로 그러한가. 소년은 그 답을 이미 알았다. 그 역시 어떠한 고뇌 끝에 질문을 내어 주었을 것이기에. 소년은 이제 그 누구와도 답을 공유할 수 없었다. 그 고뇌를 누구와도 감히 나눌 수 없을 것을 알았기에. 그러니 한 번 삼키기로 결심한 이상 소년은 그의 바닥 역시 이해해야만 했다.
그 말인즉슨 소년 역시 바닥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 소년은 그것만을 오롯이 이해했다. 그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란 결국 이런 종말 뿐이라는, 그 허망한 결론만을 온전히 습득했다. 그것이 이 새벽의 전부여야 한다니. 그것이 끝이라니. 그리 호흡해야만 한다니······
그렇다면 그에게 답을 내주어야겠지. 소년이 생각했다. 엎어진 채로, 불완전한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소년은 단 한 번도 그 거창하고도 별 볼일 없는 고통을 온전히 마주한 적이 없었다. 이따금 날카롭게 쏟아지는 약물의 의지로는 과거를 쓰게 씹어삼킨 일이 있었으나, 스스로의 의지로는 전혀. 소년은 항상 그로부터 도망치며 살아남았다. 그런데 그것을, 이제는 제 의지로 쏟아부어 소화해야 한다니.
소년은 두려웠다. 그에게 들려줄 것이라 해도, 언제까지나 도망칠 수만은 없을 것을 알면서도 그러했다. 더는 울 수 없다는 말은 쓴 시간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거짓이 될 터였다. 소년은 자신이 없었다. 그가 남길 잔해를 곱씹는 것만으로도 거짓이 될 일을, 그 쓰다 못해 괴로운 것을 씹어삼키며 여실히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내어야 했다. 그들의 존재는 그렇게 쌓아올린 것이기에. 그에 목이 졸려 잠긴다 해도. 그 어떤 호흡을 내어준다 해도. 그래도. 소년은 이미 그의 호흡을 받았기에.
어둠을 한동안 응시하던 소년은 비척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나긴 새벽으로 기운이 빠져 걸음을 제대로 내딛는 것조차도 버거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소년은 무언가에 잠식되듯이 다리를 움직였다. 그 고된 끝에도 끝이 있으리라 기대하듯이.
고작 세 걸음이 삼 년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소년은 모든 슬픔의 절차를 끝낸 것만 같았다. 결코 그러지 못 할 것임에도.
왜 이렇게까지 해?
과거의 소년이 뒤에서 소년을 불렀다. 지금과 같은 사랑을 모를 때, 악의만으로도 살아 숨을 쉴 수 있던 때, 전쟁을 삶으로 삼지 못 하고 어떤 가치도 언젠가는 반드시 빛이 바랜다고 여기던 때. 자신의 삶만이 중하다 여기던 때의 소년이,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울 수 있다고, 더 절망할 수 있다고, 그렇기에 더는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말자고 소년을 종용하고 있었다.
소년이 웃었다. 아니, 울었다.
"사랑하니까."
그것만이 그들의 약속이기에. 소년은 애정해야만 했다. 그 모든 것들을. 그것만이 소년이었다. 그였다. 그들이었다.
소년이 느리게 몸을 돌렸다. 힘없는 팔이 막사의 천을 걷었다. 소년은 어두운 밤하늘로 걸음했다. 저편에서 자그마한 불빛이 보였다. 그를 등진, 익숙한 등도.
소년이 걸음을 내딛었다.
*
"오늘은 웬 일로 잔소리를 안 하냐?"
그가 걷었던 소매를 다시 내려 익숙하게 정리하며 물었다. 남은 것들을 정리하던 소년은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간단히 대꾸했다.
"해봤자 안 들을 거 알아서요."
"야, 나 그 정도 아니다? 네가 얘기하면 그래도 듣는 척은 했어."
"그런 사람이 잔소리라는 말을 해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소년은 입꼬리로 희미한 미소를 그렸을 뿐, 농담 같은 답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미소는 끝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은 것처럼 엷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따스했다. 그는 오랜만에 마주한 소년의 미소에 잠시 시선을 주다 마저 자리에 누웠다.
소년은 홀로 호우 속에 젖어 흘려낸, 고작 며칠 전의 밤을 잊은 것처럼 굴었다. 그 호우 속에서도 어느 것도 달라지지 않아 바뀐 것 없는 현실을 그저 이해한 듯 소년은 담담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현실을 납득하지 못 한 것처럼 이따금 무너졌다. 소년의 날은 생과 죽음이 반복되어 이중나선처럼 이어지는 일이 잦았으나, 사람들 앞에서의 소년은 언제나 그러했듯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일에 매진했다.
그의 앞이라 해도 예외는 되지 못 했다. 소년은 더는 그를 책망하지 않는다는 듯 담백하게 굴었다. 잘 울지도, 웃지도 않았고 그저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고 납득한 듯 평온해 보였다. 그는 이따금 그의 선택이 소년을 정말 벼랑에서 떠민 것이 아닌가 고뇌했으나, 그런 것치고는 소년은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이미 선택을 내린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으나, 그는 소년을 언제까지고 내버려 두는 사람은 되지 못 했다.
"어이, 서태훈."
"왜요."
"할 거 다 했냐?"
기껏 할말을 찾는다는 게 그런 것이다. 소년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그에게 시선을 한 번 주었다가, 올려둔 서류에 한 번 시선을 주었다. 그게 다였다. 이윽고 소년은 생각을 마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것들을 다시 정리했다.
"이 정도면, 네. 얼추 된 거 같네요."
"그럼 간다? 진짜 다 했지?"
"그렇다니까요?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나갈 거면 얼른 나가요."
소년이 그를 쫓아내듯 손을 내저었다. 바람조차 일지 않을 손길에 떠밀리기라도 한 듯 그가 막사 밖으로 걸음을 디뎠다. 어딘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야성적인 감은 웬만해서는 틀리는 일이 없었다. 소년에게 그가 세상이듯, 그에게도 소년은 세상의 일부와 마찬가지였다. 삶을 구성하는 바탕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호흡할 수 없다. 이는 생존을 위한 본능에 가까웠다.
그가 마지못해 자리를 뜨는 것을 바라보던 소년은 다시 서류철로 고개를 돌렸다. 정리하다 남은 것들이 그곳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조금 전에 추가한, 그의 진료 차트. 특이사항이나 기록으로 남아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수치를,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도록 바꾸어 기록한,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고 보더라도 의미를 읽어낼 수 없을 것들. 소년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의 차트를 만들어 기록했고, 아무도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없게 자신만이 알아보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어떠한 절망은 오로지 소년만의 것이 되었다.
가장 위에 놓인 기록을 바라보던 소년이 손을 뻗어 이전 장으로 종이를 넘겼다. 사락, 사락. 종이가 시간을 거슬러 가는 소리가 고요했다. 소년이 그동안 잊고 있던, 아니, 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을 다시 응시했다.
그래, 소년은 알고 있었다. 사실 그 누구보다 기민하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아직 눈에 띄게 차이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기민한 사람이어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약한 수치.
그러나 분명히, 그는. 자신을 불태워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지 없이.
그래, 알고 있었잖아. 사실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잖아. 그가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그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은 채로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음을.
그리하여 언젠가는 반드시, 그를 먼저 보내게 될 것을.
호흡하고자 욕심을 부린 것은 오히려 소년이었다.
세상을 잃고 부레를 잃은 채 호흡하고 싶지 않아서, 그것이 남은 삶이 될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모든 것은 그의 손 안에 이미 놓인 해답이었음에도.
소년이 느리게 종잇장을 밀어덮었다. 과거에 머물렀던 낱장이 후루룩 넘어가 현재에 다다랐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 한 소년이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년의 시선이 이미 비어 버린 침상을 향했다. 그가 남긴 흔적들. 한 번 남기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떤 것들을. 소년은 바라보았다. 그리고 덜컥 두려워졌다. 아, 저렇게. 그가 한 번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당장 내일이라면.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소년은 일그러진 낯을 서류철 위로 무너뜨리고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 했다.
그래, 소년은 기어코 깨닫고야 말았다.
소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별을 제대로 이해한 일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많은 시일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지나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날들은 소년을 끊임없이 죽이고 살려냈으나 소년은 그 파란 속에서도 결국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직까지 세상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고 무너져 지낼 수만은 없었기에.
소년은 그런 사람이었다. 제 세상을 지키려 할 때 가장 강해지는 사람.
오늘은 때늦은 휴식을 받은 오후였다. 일에만 매달렸다가는 금방 지친다고, 억지로라도 사람들을 막사 밖으로 밀어내 한 달에 한 번은 햇빛이라도 보게 하겠답시고 대장이 만든 규칙이었다. 명령 비슷하게 내려온 수칙을 어길 수도 없어 이 날만 되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구석에서 잡일을 하거나 주변으로 놀러 나가기 바빴다.
이 날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침부터 나가버린 막사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는 마침 그와 소년이었다. 아휴, 내 팔자야. 나가서 장작이라도 패겠다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던 소년을 기어코 밖으로 끌고 나간 것은 그였다.
야야, 우리도 나가자. 다들 나가는데 안에 처박혀서 뭐 하냐, 바람이나 쐬고 낮잠이나 자자. 낮잠은 그냥 여기서 자도 되잖아요.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맨날 서류만 들여다 보니까 네가 그렇게 어두침침해지는 거다, 사람이 햇빛을 쬐어야지. 그 서류를 떠맡긴 사람이 누군드으. 그러니까 데려가주고 있잖냐. 아, 짜증 나, 진짜.
그렇게 다다른 곳이 근처의 언덕이었다. 마침 볕도 좋고, 바람도 좋았다. 잔디가 만개해 한바탕 뒹굴었다가는 온몸이 녹빛 꽃과 풀내음으로 만개할 것만 같은, 드문드문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낯선 방문객에게 기꺼이 고개를 들이미는 곳.
명당이네, 중얼거린 그가 소년을 털썩 자리에 앉혔다. 소년이 자리를 얼추 고르며 어설프게 움직이고 있자니,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모습을 보였다. 소년은 저보다 몇 배는 큰 백호를 보고도 놀란 기색 없이 제 옆을 탁탁 쳤다. 여기가 제일 나은 것 같아요. 그러자 그는 못미더운 듯 주변을 앞발로 꾹꾹 눌러보다 결국 귀찮다는 듯 아무 곳에나 털썩 몸을 뉘었다. 소년은 익숙하게 그 등에 드러눕듯이 등을 기대고 앉았다.
둘은 아주 예전, 이상하리만큼 밝게 빛나던 북극성 아래에서 새벽을 지새운 뒤로 그날의 자세를 고집하는 일이 많았다. 백호일 때의 그는 소년보다 몇 배는 더 커졌기에 어디에 눕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리저리 편한 자세를 잡다보면 결국 그리 되고 말았다. 배 위에 눕거나, 아니면 등에 기대어 눕거나. 소년은 물론 그날과 같이 등에 기대는 것을 더 좋아했다. 다른 곳은 승차감이 별로라는 소리를 했다가 한동안 도망다녀야 했다.
오늘 둘은 햇빛 아래에 편히 낮잠을 잘 것처럼 몸을 누였지만, 소년은 어쩌면 이 낮을 혼자 지새워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전과는 다른, 지나치게 크게 울리는 그의 심장 소리. 평소와는 확연히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그러나 소년은 아무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있죠, 제휘."
"······."
"되게 옛날 생각 난다. 그렇게 옛날도 아닌데."
"······."
"그냥 그렇다고요."
"······."
"당신 자요?"
소년의 물음에 그는 꼬리를 한 번 탁 휘두르고는 말았다. 응, 귀찮다는 거구나. 잔다는 거네. 이제는 모를 수 없게 익숙해진 표현에 소년은 도로 그에게 등을 기댔다. 근처에 다들 가까이 있을 거라지만, 당신도 진짜 경계심이 없어. 피곤해서 잘 때만 그런 거예요? 그런 것치고는 전에 내가 식겁해서 비명 지른 일도 있지 않았나?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 말을 그때처럼 종알거리던 소년이 느리게 말을 멎었다.
소년의 시선이 근처의 한 들꽃에 가 머물렀다. 붉고도 소박한 꽃이었다.
이맘때쯤이면 쉽게도 볼 수 있다는 원추리 꽃. 소년은 이미 그 꽃을 알고 있었다. 그 의미까지도.
그를 빤히 바라보던 소년이 손을 뻗어 꽃을 꺾었다. 그리고는 그 꽃을 호랑이의 귀 뒤에 기울여 놓듯 꽂아주었다.
그가 귀찮다는 듯 소년의 얼굴과 비슷할 크기의 귀를 펄럭거렸다. 소년은 그를 보고서도 픽 웃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당신에게만 꽃이 없어서. 나연이는 자기가 꽃이구. 대장은 만날 때부터 꽃밭이었는데. 당신만 꽃이 없길래."
그리고 이것이 그에게 바칠 마지막 꽃이 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은 절대 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소년은 이제 그 날의 의미를 알았다. 절대 올 수 없을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했다.
감히 납득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소년은. 그러니 제 세상에 만들어질 공백을 이해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이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당신과의 이별을 이해하지 못 하고 영영 그마저 밀어낼 수 있다면.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 그날을,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빼앗기게 될 것을 결국 믿지 못 한다면.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늠조차 하지 못 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기어코 삼켜지고야 말 이별의 날도 조금은 미룰 수 있을까.
"······이것조차도 이별이구나."
아, 그리하여. 이것마저도 이별이구나.
이별의 날을 고민하는 것. 그 기간을 가늠하는 것. 당신이 없을 날을 상상하는 것. 그럼에도 지금 살아 숨쉬는 당신을 기억하는 것. 당신의 귀 뒤에 꽂을 꽃을 꺾는 것. 그렇게 당신을 바라보는 것.
이것까지도 이별이다.
소년은 그리하여 이별을 이해했다.
비로소, 영영 헤어져 떨어지는 것을, 단 한 번도 이해하지 못 했던 것을 받아들였다.
그와 작별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그날조차도 사랑하게 될 것을 삼켜냈다.
울지도, 미소 짓지도 못 한 소년이 느리게 그의 너른 등에 몸을 기댔다. 소년은 울지 않았다. 그가 잠에 든 것 같았기에. 그가 자신을 이런 곳에 두고 홀로 잠들 이가 아닌 것을 알았기에. 그리하여 그 낮잠이 너무도 달고, 깊고, 서러웠기에.
소년이 느리게 자장가를 불렀다. 내리는 소나기에 고개를 들지도 못 한 채 그저 이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사라질 그를 한자락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그리하여 이 모든 것까지도 안아 보기 위해.
이별하기 위해.
이것은 아마도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남은 꽃잎.
*
소년은 이별을 긴 시간에 걸쳐 소화했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이 지난 후에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이따금 시야에 그가 걸리면 그 방향으로 몸을 틀거나 시선을 준다는 것. 그 정도일까.
소년은 그럼에도 그의 짐 정리를 종용하거나, 그가 떠날 날이 언제일지를 묻거나, 앞으로의 거취가 어떠할지를 묻는 일이 없었다. 그의 성격상 누군가의 눈앞에 굳이 죽은 그를 들이밀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그날이 온다면 단지 그는 우리가 아니게 될 뿐일 테다. 어느 먼 곳에서 아마 홀로 무덤을 만들겠지. 아무도 알지 못 할 그 어떤 곳에서.
그러나 그 말인 즉, 그가 머물렀던 모든 세상이 그저 기약 없는 죽음으로만 가득찬다는 것이다.
"있죠."
"어."
"혹시 그렇게 죽는 게 나였다면 당신은 어땠을까."
그러니 이것은 그저 호기심으로 점철된 욕망이다. 소년이 그를 응시했다. 꿈결 같은 산들바람이 이는 시기였다. 흩날리는 바람 틈에서 소년은 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들려올 그의 답을 기다렸다.
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너는 후방 담당이잖냐."
"후방이 공격 받은 적이 한두 번이어야죠."
"그때마다 멀쩡했잖아."
"그러니까 만약이죠."
"애초에 대장 없으면 다음 결정권자는 너잖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면 네가 있어야 하는 게 맞잖아."
"당신은 가끔 나보다 대장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까먹는다? 그 사람이 생각 없이 맨날 먼저 앞으로 튀어나가서 그렇지, 일단 내가 대장을 보호해야 하는 건 맞거든요?"
"너야말로 방금 대장한테 생각 없다고 말한 건 알고 있냐?"
평소와 다름없는 가벼운 이야기들이 지나갔다. 소년은 구태여 더 묻지 않은 채 제 옆에 피어난 꽃을 한 송이 꺾었다. 국화였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그 이별로부터. 소년이 느릿하게 만개한 꽃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생각 안 해봤으면 말구. 그냥 궁금했어요."
"별 게 다 궁금하네."
"당신도 나한테 별 걸 다 맡겼잖아요."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소년이 도로 얼굴을 들었다. 그가 소년을 응시하고 있었다. 드물게. 그가 물었다.
"후회하냐?"
어떤 것을 후회하는지는 굳이 표기하지 않은 문장이었다. 소년이 한동안 그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에는, 웃고야 마는 것이다.
"나 이거 전에도 대답했는데."
마치 그것만이 그들의 답이 될 수 있다는 듯이.
소년은 이따금 후회했다. 그의 죽음을 넘겨받지 말걸. 그의 이기심을 아는 척 하지 말걸. 모든 일에 태연한 척 하지 말걸.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후회하고야 만다. 그렇게 살았더라면 그가 죽음을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그가 나를 믿는 일도 없었겠지. 가까워질 일조차 없었겠지. 그렇게 밤이 길어지는 일이 잦았다.
그랬기에 소년은 그 후회조차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다시 돌아간다면, 그래도 기어코, 세상 안에 황금빛 소나기가 내리는 것을 달갑게 바라보고 있을 터였으므로. 그렇다면 결국 그 공백마저도 사랑해야 한다. 소나기가 그친 세상까지도. 그러니 소년은 제게만 유독 잔인한 그라 할지라도, 그토록 긴 이별을 남길 그라 할지라도 영영 미워만 할 수는 없었다.
아마 그 역시 이를 알았을 것이나.
*
밤이 깊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별이 떨어지는 밤이었다.
소년은 그의 상태를 기록한 서류를 희미한 양초 불에 비추어 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평소와 다름없이 깔끔히 자리를 정돈했다. 자리에 누워있던 그가 기구 몇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곧 소년에게 가로막혀 제지당했다. 어허, 어디다가 지금 손을 대요. 나는 만지지도 못 하냐?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무너질 것 같은 서류더미를 어찌저찌 처리하고 나자 소년은 비는 손이 없어졌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곧 무너질 것처럼 소년이 휘청이길래 그가 기어코 손을 뻗어 소년을 붙들었다. 소년이 간신히 균형을 잡자 안 되겠다는 듯이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이거 혼자 들고 갈 수 있어요."
"누가 뭐래? 천막 문은 못 열 거 아냐."
"열 수 있거든요."
"저 문이 발로 열리면 그건 새 능력이 생겼다고 봐야 할걸?"
시답잖은 소리들이 오고 갔다. 결국 그를 말리지 못 한 소년이 느릿느릿 문으로 향했다. 그가 천을 걷어 문을 열어주자 소년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금빛 눈이, 어둠을 온전히 담은 눈과 마주쳤다.
소년이 생각했다. 그가 그곳에 있었다.
"고마워요."
"오냐."
"잘 자요."
"오늘 불침번 너냐?"
"네. 날 추워지니까 이불 잘 덮고 자요. 감기 걸려."
"내가 그러는 거 봤냐. 핫팩 같은 남자한테 과한 걱정이야."
잘 자라는 말에서 끝났을 이야기가 느릿하게 길어졌다. 꼭 미련으로 발을 떼지 못 하는 것만 같이. 소년이 그를 잠시 마주하며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이 똑같은 오늘,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이 이어지던 날.
소년은 자그마한 숫자 몇과 기록 몇으로 이 날이 마지막일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결국 이해하고야 만 것. 그가 남긴 것들을 받아들이고야 말 것.
그렇게, 사랑하고야 말 것이라서.
이 날을 위해 그 긴 시간을 비워내 사랑한 것이 아닌가.
"한 번쯤은 그래도 좋잖아요."
"······."
"당신, 내일은 없을 거니까."
잠시 둘은 말이 없었다. 그는 그제야 소년이 오늘따라 유달리 짐이 많았던 이유를, 두 손과 제 품 하나를 기어코 꽉 채워왔던 이유를, 굳이 양초를 켜야 할 밤에 그를 찾아온 이유를 알아챘다. 고맙다는 말도, 잘 자라는 말도 소년에게는 말 한 마디의 의미가 아닐 것을, 그리하여 소년이 어떤 시간을 견뎌야 할지를 이해했다.
침묵을 깬 것은 그였다. 그는 이별이 길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굳이 쓸모없는 희망으로 소년을 벅차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답은 간결했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그래."
소년은 더 묻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저 언제까지나, 어둠 속의 그 빛을 기억하려는 듯 그를 빤히 마주본 것이 다였다. 그는 처음으로, 어둠 속에서 소년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별이 어둠을 뚫고 빛을 내보내 하늘에 닿게 하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두어 번 지나간 것 같았다.
소년이 느리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별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모든 것의 종지부를, 지금 찍어야 할 것처럼.
마지막 말은 생각해둔 것이 없었다.
그러니 그저 할 말을, 결국 이것을 이해한다는 말을, 남은 날들을 감당하기 위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녕."
그리하여 소년은 인사를 건넸다.
그 모든 것들을 늘어놓기에, 이 밤은 너무 짧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소년을 이해했다.
"잘 자라."
그것이 다였다. 길었던 이별은 비로소 종지부를 찍었다.
소년은 그를 기억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 긴 이별을 굳이 짧게 하기 위해 손에 안아야 할 짐을 한아름 안고 오지 않았던가. 구태여 자신을 지키려고, 그를 붙들고 무너져내려 꼴사납게 울지 않으려고 이 어둠을 두르고 오지 않았던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러나 그를 전부 풀어놓으려면 이 밤의 어디 즈음을 버혀 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밤하늘은 그가 숨을 내쉴 마지막 장소가 아니던가.
삼 초가 누군가의 장례를 한 번 치른 것처럼 삼 년과 같이 느껴졌다. 소년은 망설였다. 그러나 끝내 입을 더 열지 않았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딛었다. 걸음은 처음이 어렵지, 그 후로는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유순하게도 이어졌다.
소년은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끝내 그러지 못 했다.
그리고 그 역시 그 마음을 알 터였다.
새벽 공기가 유난히도 무거웠다.
*
혼자 깨달은 결말이 차라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날이 길게도 이어졌다.
그의 천막으로 향한 아이 하나가 대수롭지 않게 돌아왔을 때부터 아마 그 일은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가 자리를 비운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이들도, 하루이틀이 지나고 그의 공백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자 안색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부대 전체에는 비상이 걸렸다. 부대장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진 일이다. 결코 사사로이 볼 수만은 없었다. 한동안 난리법석이 이어졌다. 소년은 잠도 자지 못 한 채 덤덤하게 명령을 이어갔다. 임시로 부대를 4개로 나누어 재편성했습니다, 각자 흩어져서 탐색하되 혼자 다니는 인원은 없도록 주의해 주세요. 단독 행동은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아직 채 파악도 되지 않았다는 걸 잊지 마시고요. 거짓말은 태연하게도 나왔다. 오랜 연습의 결과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났다. 여전히 소년이 잠에 들지 못 하는 날은 이어졌으나 잠을 자기 시작하는 인원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하는 이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남은 제 아이들을 달래며 소년이 대답했다. 빈 자리는 충원하지 않습니다, 폴라리스 부대는 임시 부대장을 선출한 뒤 다른 부대의 산하로 들어갑니다. 이 역시 오랜 생각의 결과였다.
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다 보면 시간은 야속하게도 잘 흘렀다. 소년은 오랜 피로의 끝에 쓰러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천막은 폐쇄하고 다른 자리로 대체하겠습니다. 그는 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우리를 두고 며칠 이상 자리를 비운 적이 있던가요, 그가. 예, 그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소년이 이어지지 않는 잠을 억지로 이어붙인 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여느 때처럼 휴일이 찾아왔다.
그 하나가 없다고 세상은 이토록 조용해졌는데도, 찾아올 것들은 어찌나 꼬박꼬박 잘 자리를 찾아오는지.
소년은 오랜만에 천막 밖으로 나섰다. 소년을 알아본 이들이 안쓰러운, 혹은 반가운 인사들을 건넸다. 아이고, 부대장 얼굴이 반쪽이 됐네. 식사는 하셨어요? 어디 가세요, 같이 가드릴까요? 부대장, 이거 보세요, 제가 만들었어요. 잠은 주무셨어요? 대장은 괜찮던가요?
평소와 다름없이, 아니, 평소와는 다르게 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던 소년이 옅게 미소지었다. 괜찮아요. 밥은 먹었어요. 햇빛을 못 본 지 오래 되어서 산책 좀 가려고요, 혼자 다녀올게요. 잘 만들었네, 손재주가 점점 늘고 있네요. 조금 잤어요, 다녀올게요. 그리고 소년은 밖으로 향했다.
기다리던 이가 돌아오지 않는 언덕은 평소보다 험하게 느껴졌다.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드넓은 풀밭을 지나치면 인적이 드문 깊은 숲길이 이어졌다.
그와 이곳까지는 와본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발걸음은 더욱 쉽게 와닿았다.
숲의 한가운데, 너른 들판에 선 소년은 그제야 조금 가빠진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쯤 왔으면 되었겠지. 인기척도 없으니 이곳이 제일 적당할 것이다. 멀어서 다들 잘 오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소년은 숲의 가운데를 가만히 응시하다 느리게 주변을 걸어다니며 돌을 모아오기 시작했다. 품에 몇 개를 안으니 금방 품이 묵직해져 길지는 않았으나. 소년은 그 숲 가운데에 돌로 작게 탑을 쌓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누군가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만.
어차피 소년의 솜씨가 그리 좋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소년은 무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 많았으므로.
"어차피 당신 이런 거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더 알리지 않았잖아.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 한 것도, 나만을 믿었던 것도 아닐 테니.
그저 당신은 내게 의지하고 싶었던 것이고, 나는 그만한 사람이었던 것뿐이다.
이윽고 소년이 짧은 손장난을 마쳤다. 소년이 손을 떼어낸 곳에는 자그마한 돌탑만이 남았다. 어딘지 허전한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소년이 손을 뻗었다. 돌탑의 꼭대기를 잠시 어루만지던 소년이 손을 떼어내자 그 위에는 꼭 세상의 것 같지 않은 국화와 원추리 꽃이 한 송이씩 남았다.
이쯤하면 되었나. 소년이 느리게 그 앞에 주저앉았다.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만한 기운이 없었다. 세상이 지나치게 조용해서 그럴 것이다. 소년이 생각했다.
"자주 안 올 거예요. 당신 그런 거 안 좋아하는 거 알구."
"······."
"대답 없을 사람에게 말 거는 것도 그만둘 거고요."
"······."
"그렇게 시간이 지나게 되겠죠. 내게는 아직 다른 아이들도 남아 있으니까요."
"······."
"그런데 당신은 왜 매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까."
"······."
"당신도 내 아이인데."
"······."
"당신이 언제까지나 가볍기만 할 줄 알아······"
"······."
"그리고 나는 따져 묻지도 못 하고."
"······."
"당신은 그걸 알아서 날 선택했을 거고요."
"······."
"가끔은 그러지 말걸 싶어. 당신이 그 비를 흩뿌리게 두지 말 걸."
"······."
"따뜻한 소나기도 내린 후에는 결국에는 식어버리는데."
"······."
"그때는 왜 그걸 생각하지 못 했을까."
"······."
"하긴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내버려뒀겠지."
"······."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
"당신이 그곳에 있었듯이."
"······."
"당신도 참 잔인해."
"······."
"더는 없을 걸 나보다 먼저 알았을 거면서."
더는 없잖아. 내게,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잖아.
영영 더는, 만날 수도 없고 슬퍼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이. 이제는 그저 당신이 그곳에 없을 터라.
속에서 무언가 북받치듯 올라오는 것 같았다. 소년은 애써 그를 삼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길지 않았다.
참아 내려던 소년은, 혼자 시간을 보낼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못 하겠다는 듯이 속에 담아두었던 것을 이윽고 쏟아냈다.
눈물이 더는 나지 않는다 생각했다. 다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이었어. 거짓말이야. 거짓말.
소년은 지금까지 그저 이별을 이해할, 오롯이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별이라 믿었던 것들은 전부 거짓이었다. 그 거짓 가운데에서도 그는 오롯이 숨을 쉬며 존재했으므로. 지금까지 이별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다 거짓말. 거짓말. 더는 밤하늘에 별이 빛나지 않으리라는 것만이 진실로 남아서. 그것이 그토록 고통스러워서. 서러워서. 그럼에도 그를 사랑해야 해서.
그 어느 때의 새벽처럼, 그 누구도 젖지 않을 호우가 쏟아져 내렸다. 이제는 등을 두드려 줄 사람 하나 없을 텐데. 영원히.
소년은 모든 처절함을 파묻듯이 울었다. 하늘이 푸르렀고, 이는 산들바람이 이따금 돌무덤 위의 꽃잎이 펼친 손을 잡아보며 지나갔다. 그 가운데에서 소년은, 더는 찾아오지 않을 틈에 쉼없이 서러움을 파묻었다. 그와 함께 그와의 모든 것을 이곳에 내려놓고 가려는 듯. 그것이 남은 이의 일이라는 듯. 더는 무너질 수 없다는 듯이.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이 소년이었기에. 이제부터는 그 슬픔마저도 사랑해야 했기에.
그것이 우리가 되리라 이미 나눈 약속이기에.
별빛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마지막 인사를 나누듯 오래도록 소나기가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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