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챌린지 50 :: No. 13. 아무도 모르는 비밀.
- 자캐즈 유수현운 독백 로그.
- 주의: 우울에 대한 묘사, 약한 자살 심리 묘사.
- 3900자 정도.
건조하다. 문자가 바스락 소리를 낸다. 좀 더 만졌다가는 타오를 것이다.
사실 아무래도 좋다. 알 바 아니다. 젖지 않는 삶 따위 아무래도 좋다. 비가 내리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어디에선가 스러질 목숨 따위 아무래도 좋다. 누가 살든 죽든 알 바 아니다. 오늘 부지한 삶 따위 아무래도 좋다. 내일 숨을 쉬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아마 착각일 것이다. 고개를 들었다. 꽃잎이 떨어진다. 다시 보니 빗방울이었다. 손을 펼쳤다. 손에 무언가 떨어진다. 아마 젖은 생명의 자취일 것이다. 손바닥을 떠돌던 것이 굴러 떨어진다. 굳이 잡지 않았다.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익숙했다.
맞은편의 유리창에 누군가의 얼굴이 비쳤다. 붉은 머리칼이 온통 젖어 있었다. 두 눈이 서로 다른 세상의 빛을 내고 있었다. 말없이 바라보았다. 세상 두어 개가 나를 바라본다. 응시했다.
타인의 불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할 줄 아는 것은 타오르는 것 뿐이다. 내 생명의 불을 끌 빗물 따위 애초에 얻을 수 없다.
시선을 떨어뜨린다. 수면에 파문이 일었다. 수많은 동그라미가 삶을 스치고 지나간다. 부러 그 위에 가위표를 쳤다.
옳은 것 따위 없다. 내가 그리 만들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삶에는 정답 없이 틀린 것 뿐이다.
수많은 충동은 후회의 흔적. 셀 수 없이 지워온 생명은 살고 싶다는 발버둥의 증거. 그 어느 것 하나 옳은 것은 없었다. 쉬고 있는 숨은 징벌을 뒷받침했고, 움직이는 몸은 지옥의 무게를 안았다. 끝없는 한탄이 영혼을 붙잡는다. 그 손아귀 안을 맴돌며 비명을 지르면 그것이 나의 언어가 된다. 그를 잿더미로 만들어 지옥불에 내던지면 그것이 나의 단어가 된다.
아주 보잘것없는 삶이 있었다. 그를 살아가려 했다. 그러자 은하수는 그 위에 적란운을 덮어주었다.
아주 작은 애정이 있었다. 그를 품 안에 넣으려 했다. 그러자 달은 그 위에 염을 했다.
아주 작은 사람이 있었다. 그를 잡으려 했다. 그러자 태양은 그 위에 천국을 풀어놓았다.
아주, 아무것도 없는 호흡이 이제 남았다.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폐가 타고 있었다.
비가 내렸다. 좀 더 만졌다가는 타오를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사그라들고 싶었다.
가지지 않는 삶. 그것은 품는 것이다. 나락을 기어가는 삶. 그것은 살아가는 것이다. 한탄하는 삶.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삶은 봄이다. 그러니 그는 내 것이 될 수 없다. 누군가 물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너는 무엇을 소비하는가? 비명을 질렀다. 지독하리만치 기나긴 비명이었다.
언젠가는 한 번 신의 앞에 기어간 일이 있었다. 살아있는 것은 끔찍합니다. 살아있는 한 언젠가는 꽃이 핍니다. 살아있는 한 온기가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한 기억이 만들어집니다. 온몸이 타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눈이 말라갑니다. 입이 막힙니다. 귀가 비틀립니다. 그 모든 가능성을 태워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끔찍합니다. 살아있는 한 웃게 될 것입니다. 살아있는 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있는 한 죽고 싶지 않아질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절망스럽습니다. 멈추지 않는 욕망이 삶에 쇠사슬을 겁니다. 그치지 않는 온기가 품을 파고듭니다. 마르지 않는 눈물이 손발을 묶습니다. 그 모든 게 행복하리만큼 두렵습니다.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응시하는 것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을 꿈꾸는 것이, 그 모든 가능성이 생명이라는 그 하나가! 이 삶이 그를 가져서는, 바라보아서는, 이루어서는 안 됩니다. 감히 살아있는 것은 끔찍합니다. 죽고 싶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더는사랑같은잿더미를사랑할수있는자격을가지고싶지않습니다
누군가 물었다. 죽고 싶은가? 대답했다. 예.
누군가 물었다. 죽을 수 있는가? 대답했다. 예.
누군가 물었다. 죽을 자격은 있는가?
대답하지 못 했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종말을 맞는다. 네가 원하는 죽음이란 종말인가? 누구를 위하여 그 모든 것을 버리는가? 그 가능성은 무엇을 위해 멸망하는가? 그러나 정말 죽음 끝에는 종말이 존재하는가? 온몸을 불사지르는 고통은 그 종말의 끝에 멎는가? 욕망은 그 종말에 불타 사라지는가? 네가 원하는 종말이란 죽음인가? 그 끝에서 종말에 잠든 이의 영혼은 무엇을 위해 잠들었는가? 가져서는 안 되는 삶은 지금까지 무엇을 기반했는가? 그 호흡은 무엇을 낭비했는가? 쏟아지는 폭포 같은 불에 온 죽음을 불태우며 살아왔던 삶은, 결국에는 죽음이 아니란 말이던가? 행복하리만치 두려운 것을 사랑한 것, 그는 네게 가능성도징벌도삶도그어느것도아니었단말인가
왜 대답하지 못 하지?
그날 신을 죽였다.
죽지도 살지도 울지도 못 하는 존재가 이어졌다.
눈을 떴다. 진갈빛 세상이 나를 바라본다. 좀 더 만졌다가는 타오를 것이다.
제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하고 싶지도 않았다.
살아있는 한 뜨거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타오르고 싶지 않았다.
언제 한 번 물은 적이 있었다. 가장 무거운 벌은 무엇일까.
누군가 답했다. 영원히 사는 거지.
살고 싶었다.
살아있는 한 욕망은 죽지 않는다. 생명은 욕망을 먹고 자란다. 내게는 삶과 벌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명에게 저주를 먹였다. 욕망을 소비하면 죽게 되리라.
삶이 죽었다. 그러나 살아갔다. 죽지도 살지도 못 한 삶을, 신이 감히 나를, 뻔뻔하게도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내려다봤다.
웃었다.
삶은 절망적일만치 철저했다. 잠들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깨어 있어야만 했다.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었다. 언젠가는 살게 될 것이었다. 어느 것도 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잠들지 않아야만 했다. 밤을 새는 날이 늘었다. 해가 뜨면 시선에 감사하며 혼절했다. 누군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가야, 낮을 지새지 말아라. 해를 숭배하지 말아라. 누구지? 죽여버려야겠다고 잠결에 생각했다.
목숨이 붙어 있음에도 살지 않아야 했다. 죽었음에도 죽지 않아야 했다. 욕망하지 않는 삶은 난해했다. 그러나 죽을 수 없다면 살아야 했고. 살아있다면 벌이 필요했다. 비를 맞으며 생각했다. 죽을 수 없으니 다른 벌을 받아야만 한다고. 감히 애정을 품으려 했으니 나는.
멸망은 오롯하게 혼자만의 것. 말라 비틀어질만큼 철저하게.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을 것.
충동이 후회를 사랑해서 삶이 황폐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만 했다. 애정을 관망하고 있으면 재가 불을 덮었다. 가장 커다란 재앙이 들숨으로 찾아왔다. 뱉을 수가 없었다. 씹어삼키는 산소가 썼다. 삶에서 죽음의 맛이 났다. 죄의 맛이었다. 최악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그럼에도 살아있었다. 그 호흡 하나가, 심장 박동 하나가 그토록 비참해서. 가슴팍에서 쉬지도 않고 울리는 것은 얄팍한 애정 나부랭이가 아닌, 그저 잊지 말라는 절규. 이 살덩이가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뿜어내는지를, 네 온몸을 돌고 있는 것은 온기 아닌 저주임을 잊지 말라는 울부짖음. 그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저 두 발로.
가질 수 없기에 오로지 하나만을 품을 수 있다. 이 삶은 회한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것이 곧 세뇌와도 같은 벌이 되었다. 단 한 번이나마 놓친 것에 다음은 없다. 그 어느 것도 죽음으로는 채울 수 없다. 지독한, 가장 지독한 생의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살았다. 처음부터 의미는 없었다. 그러니 이 이름은. 그래, 나는 네 앞에 무릎을 꿇었고, 너는 죽은 몸으로도 웃었고, 나는 이렇게 너를 두고 살아서, 여즉 살아서, 미치도록 살아서, 죽도록 살아서,
"유수현운."
소년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새 비가 그쳤다. 머리 위로 씌워진 우산을 바라보는 소년의 뺨을 타고 빗줄기가 흘렀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감기 걸린다, 새끼야. 뭐 하냐."
"딱히."
"그럼 들어와."
소년의 눈가를 빗줄기가 적셨다. 붉은 머리칼이 빗물에 온통 젖어 소년의 뺨을 간질였다. 불에 죄다 타올라 건조한 눈으로 소년이 대답했다.
"응."
건조했다. 소년의 생명이 마른 소리를 낸다. 좀 더 만졌다가는 타오를 것이다.
소년은 그를 기다려왔다. 손에서 불씨가 빗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멸망이 가까웠다.
20년도 6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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