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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기타]/글챌린지 50(19.07~)

일 하나의 일지.

by CAGAMINE LANJIE 2021. 5. 25.

 

 

 

- 글 챌린지 50 :: No. 11. 오늘 하루는 어떤가요?

- 우울 자체에 대한 묘사와 우울하거나 기분 나쁜 묘사가 존재합니다.

- 4000자 정도.

 

 

 

 

 

이것은 일 하나만의 일지이다.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정할 수 없다. 다음 발을 내딛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은 기록이 전부이다. 모든 기록이 멈추는 순간 나 역시 숨이 멎는 것이다. 날것의 푸른 빛을 그대로 전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것은 글이 아니다. 내가 가리키는 방향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둠 한 조각일 뿐일 수도 있다. 내 눈앞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같은 처지일지 모르는 이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슬퍼해야할지 기뻐해야할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푸른 빛을 재료로 조각을 만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푸른 빛을 마주보는 것뿐이다. 정확히는, 그를 마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내 과거에서 오는지, 현실에서 오는지, 미래에서 오는지조차 모른다. 그를 마주보면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 세 개의 시간선을 걷는 동안 나는 세 갈래로 찢어진다. 후회가 내 한쪽을 붙들고 갈망이 다른 한쪽을 밀친다. 중간에 선 내 나머지 조각은 비명을 지르는 법을 잊고 흔들린다. 누군가는 푸른 빛을 조명 삼아 글을 쓴다. 누군가는 그를 빚어 조각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를 물감으로 절망적이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다. 그러나 나는 우울을 무언가로 만드는 재주 같은 것은 없다. 내가 쥐어짜며 빚어내는 활자는 전부 날것의 그림이다. 내가 쓰는 것은 글이 아니다. 다듬어진 조각상이, 아름다운 예술이 아니다. 그저 오늘도 하릴없이 살아남았음을 처절하게 기록하는 것일 뿐. 나는 활자를 쥐어짜며 살아남아왔다. 그렇기에 나를 쥐어짜면 활자가 튀어나올 뿐. 물론 처절하게 비틀린 모양의.

 

내 것은 전부 날것이었다. 손에 쥐여지는 것은 전부 흔해빠진 프로토타입과 샘플이었다. 정돈된 것은 없었다. 할 줄도 몰랐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그래봤자 볼 사람도 없었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게 나라는 게 정말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누군가는 내가 지나치게 유난을 떤다고 했고 누군가는 내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라고 했다. 나는 유난이 무엇인지 몰랐고 쓰레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면 안 된다. 그 한 마디가 나를 정의하는 전부였다. 품어진 기억은 없다. 밀쳐졌다. 그것이 기준이었다. 손이 얼고 나면 떼어냈고 손을 데이고 나면 떼어냈다. 이 정도는 괜찮다. 그 한 마디는 없었다. 사실 괜찮아봤자 어쩔 것인가? 다음 순간이면 또 밀쳐지게 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를 외로움이라 정의했고 누군가는 이를 괴로움이라 정의했다. 나는 그를 자기 자신이라고 정의했다. 들여다보면 외로워지고 괴로워지고, 끝내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데 손이 차가워서 그럴 수가 없다. 처음부터 비명 지르는 법을 배워둘 걸 그랬다. 누군가는 그 옆에서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는 이성을 잃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는 미쳤다는 정의를 다시 썼다. 나는 그를 전부 관찰했다. 누군가는 나와 같이 일지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다. 그러나 나사는 정확히 무엇인가. 나는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다.

 

정돈되지 않은 활자를 조물거리다보면 그것이 곧 살아남은 기록이 된다. 나는 오늘 머리를 비워가는 슬픔과 같이 무엇을 했는가. 무슨 생각을 했는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나 부질없는 이야기들이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사람은 결국 어떻게 죽게 되는가. 나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야 하는가. 방향조차 가지지 않은 이 사무치는 그리움은 전생에서 오는가. 혹은 미래의 그 어딘가에서 죽어있을 내가, 나를 죽이려 부르는 미친 노래를 듣고 있을 뿐인가. 그런데 죽었는데 미쳤을 리가 없잖아?

 

부를 이름이 없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첨예한 푸른 빛은 다듬어지지 않았다. 찔리는 순간 죽는다. 내 팔의 반만을 내어줬으니 나는 분명 목숨 대신 그 이름을 빼앗긴 것이라 생각했다. 기억하는 가장 처음의 이별에서 누군가는 내 목숨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 뒤로는 부를 이름이 사라졌다. 기억나지 않는 이름이 많아졌다. 내가 잃은 것일까. 그렇다기에는 내가 가진 이름이 없었다. 나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며 앓아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며 앓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의 약의 이름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미적지근했다.

 

상상은 좋은 피난처였다. 내게는 백호 친구가 있었다. 나는 공상을 좋아했다. 그곳에서는 침엽수림이 줄기차게 들어서있었고, 비를 피할 하얀 천막이 있었다. 겪을 수 없는 일을 상상하고, 알 수 없는 것을 상상할 때마다 푸른 빛은 별빛처럼 반짝이며 내 발치를 비춰주었다. 나는 그 빛으로 백호를 읽었다. 어느 날은 날개가 달려 날아가 하늘에서 소리내어 우는 것을 상상했다. 어느 날은 나를 모르는 이들만 존재하는 거리로 가 울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상상했다. 어느 날은 활엽수를 불태우는 것을 상상했다. 내게는 번역체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발을 내딛는다. 그 다음 퍼즐을 맞추는 것은, 다음 발을 내딛을 장소를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퍼즐이 뭐였더라. 발을 어떻게 내딛는 거였더라. 걷는 건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걷는다, 라는 단어는 언제 쓰는 거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내 문장은 길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려내는 것은 조각이다. 전체 그림의 일부, 그런 조각이다. 전부 맞추고 보면 괴상한 그림이 된다. 내가 무얼 그렸더라. 다시 보고 나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상태가 옳다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 이제는 직각을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뱉어나고 나면 조금은 나아진다. 내 모든 것이 날것인 이유는 아마 그것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상관 없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 한다는 것은 출입금지 선언과 똑같다. 빈곳에는 붉은 장미가 그곳에 피어난다. 꺾으면 푸른 핏물이 배어나온다. 죽은 기억의 것이다. 다른 말로는 나의 것이다. 한자가 의미가 있던가. 아니, 잊은 것에는 의미 같은 건 없다. 내 근처에는 푸른 별의 시체만이 쌓인다. 그곳에서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춥다. 사실 내가 있는 곳은 전부 추웠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탔다. 늘 떨었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은 위험하다. 심연 역시 나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시선이 마주치면 이해하게 되어버린다. 이해하고 나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빈 공백은 일부러라도 맞추어서는 안 된다. 비어 있는 머리 안에는 푸른 하늘이 들어찬다. 떨어진다. 내게 날개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바다에 떨어져 정신을 차리면 늘 새벽 다섯 시 반이다. 잡은 것이 없으니 버릴 것도 없다. 이렇게 아무 것도 잡지 않고 나아가면 될 거라고, 매일 새롭게 다짐한다. 그러고나면 푸른 빛이 내 손을 잡아왔다. 지겹다. 구역질이 치민다. 내일은 꼭 머리를 잘라야지 생각했다.

 

마지막 문장을 적고 싶지만 시작했던 문장이 없다. 오늘 역시 푸르렀다. 비가 내렸는데. 공기가 숨을 거부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아주 촘촘한 비에 대해 읽은 기억이 있다. 모모였을 것이다. 작가까지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책을 사랑한다. 설계자가 그를 빼앗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 것이 되었다. 내 세상을 지탱하는 이쑤시개는 전부 그렇게 되어 있다. 언제 무너뜨릴까. 그러면 영원한 푸름이 나를 제 것으로 만들 것이다. 밑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까지 터뜨려버릴 수 있다면. 나는 그를 희생이라 부르지 않았다.

 

비는 생각을 쓸어가기에는 너무 무겁다. 비는 푸른 빛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빛을 비춰본 적이 있는가? 그는 때때로는 너무 아름다워서 시신경을 앗아간다. 그러고나면 온 세상이 푸른 빛이다. 죽은 물고기 같은 눈이 나를 바라본다. 지나고 나면 알아차린다. 비에 비친 나의 눈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은 없다. 내 세상은 온통 흐린 구름만이 푸른 빛을 품는다.

 

잠이 온다. 다시 읽지 않을 것이다. 나는 0과 1을 몇 개나 버렸을까. 모르겠다. 어차피 거부당할 것이다. 나를 허락하는 건 뒤틀린 활자가 쓴 푸른 빛 뿐이다. 나는 그를 애정하고 증오한다.

 

이것도 선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년도 2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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