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멋진 공조즈 썰에서 나왔습니다 22
§ 주의: 폭언, 폭력, 살해, 범죄 미화, 인간을 향한 비윤리적인 대우 및 사상
§ 다수의 날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퇴고 없음, 비문과 맞춤법 주의.
§ 해단이를 향한 공조즈 자캐들의 생각이나 태도 정리를 생각하고 썼습니다. 해단아 비화야 사랑한다.
갈해단은 어쩌다 인생이 이렇게 흘러왔는지를 생각했다.
그러게,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그러니까, 오늘은 어쩐지 수사 진행이라고는 하나도 안 되는 것 같고, 이런 날 책상 앞에 앉아서 있지도 않은 증거물 들고 머리 싸매는 건 인생의 낭비겠고, 마침 날씨도 좋고 햇빛도 좋고 바람도 좋으니 나가서 머리나 식히자고…… 이거 누가 그랬더라?
"자, 다시 갑니다!"
아, 저 사람이 그랬지. 맞다, 저기서 배드민턴채 들고 날아다니고 있는 저 사람이…… 근데 저 사람, 이 수사팀 팀장 아니었나? 팀장이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팀장이면, 오늘 쉬고 싶다고 팀원들이 난리를 쳐도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해야 하는 사람 아닌가? 보통 그렇지 않나?
"저 배드민턴 동호회 가입되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그래, 저렇게 팀원이 난리를 쳐도…… 아, 난리가 아니네. 상호인지가 이미 다 끝났네. 그러면 저러고 있어도 되지. 응, 그래, 완전……
되겠냐!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이 양반들은? 갈해단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둘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가 쳐다보든지 말든지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그들만의 배드민턴 게임은 무심하게도 계속 이어졌다. 시꺼먼 갈해단의 눈동자 위로, 허여멀건 배드민턴 공이 휙 날아가며 포물선을 그렸다.
미제 사건 카네 코르소 임시 수사 팀, 약칭 네코 팀은 한창 수사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미제 사건 번호 1401. 코드, 카네 코르소. 벽천시의 뒷골목에서 발견된, 현대판 콜로세움.
숱한 범죄가 일어났을 것이 분명한데도 윗선에서 수사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모두가 손 놓고 지켜보다 미제 사건으로 종결시킬 수밖에 없었던 대형 범죄.
그를 수면 위로 끄집어 낸 것은 한 총경이었다. 그 뒤에 시커먼 속셈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면서도, 편려원은 그의 손을 잡았다. 높은 분들의 사정이야 알 바 아니다. 당장 뒤이어 발생할 피해자를 줄일 수만 있다면, 범죄자들의 멱살을 잡아 시퍼런 철창 속으로 던져 넣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속셈에도 기꺼이 손을 보탰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임시 수사 팀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증거 부족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상태였다. 편려원이 새로운 수맥 탐지기라고 즐겨 부르는 갈해단을 찾아낸 후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그동안 네코 팀은 관계자들의 뒤를 파고, 새로운 목격자를 찾기 위해 탐문 수사를 이어갔다. 그러나 수사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기존의 방법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즈음에 다다랐다. 모든 수사가 흔히 거치는 구역이었으나, 그것이 이 현재를 정당화 해주지는 못 했다.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결국 팀원들은, 해봤자 고작 셋이었지만, 다시 모여 머리를 맞대었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합니다. 임시 팀장인 편려원의 말이 그 시작을 알려왔다.
편려원은 자신의 개인적인 백업들을 입에 담았다. 자신과 개인적인 거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류비화는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적법한 절차로 얻지 못 한 증거는 채택될 수 없고, 채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이 범죄에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경장님, 이 뒤에는 분명히 더 커다란 조직이 숨어 있을 겁니다. 벽천시에서 파악된 조직 범죄만 해도 부류가 세 개가 넘습니다. 벽천시를 갈라먹는 깡패 조직이 세 개는 넘는단 말입니다. 자질구레한 애송이 놈들과 여기를 새로 먹으려는 놈들을 합치면 그의 배는 될 겁니다. 이 사이에서 우리가 윤리 따위를 챙기면서 수사를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여기에 희생된 피해자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잊으셨나요? 말씀하신 분들은 전부 그런 조직폭력배 비슷한 곳에 몸담고 계시는 분들로 생각되는데, 아닙니까? 잠입 수사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보고도 올리지 못 할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고요. 게다가 잠입 수사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잖습니까, 지금은 신중해야 할 때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놈들을 무너뜨리지 못 하면 윤리가 다 무슨 소용입니까?"
"납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달성한 결론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짝짝. 류시하가 짧게 박수를 쳤다. 마주한 손바닥에서 크지 않은 파찰음이 울렸다. 편려원과 류비화가 동시에 그쪽을 돌아보았다.
"저러다 싸우겠네. 이건 싸워서 해결하실 일이 아닙니다. 분위기를 적당히 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싸우는 거 아닙니다."
"싸우는 거 아니에요."
"예, 그렇겠죠, 압니다. 알겠으니까 두 분은 지금부터 용용체 쓰십시오."
"싸우는 거 아니라고용."
"싸우는 거 아니에용."
갈해단은 둘의 논의 비슷한 것을 지루하게 바라보다 그냥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런 큰 범죄를 수사하겠다는 건가? 대한민국 경찰의 미래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그 대단한 용용체를 썼음에도 회의는 마땅한 타협점을 찾지 못 한 채 끝이 났다.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두 어른인 이상 감정 싸움으로 번질 일은 없었으나, 해결책을 찾지 못 해 답답하게만 유지되는 상황의 긴장감만은 풀어내야만 했다.
둘을 적당히 말리느라 기력을 다 써 의자에 반쯤 누워 있던 류시하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체육인이었다. 편려원은 취미로 펜싱을 했고, 류비화는 배드민턴을 좋아한다고 했다. 둘이 운동이라도 시키면 좀 나아지려나.
그때였다.
쾅!
"와아악!"
"으악?"
"기습인가?"
"기습! 이지만 같은 편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누군가 수사 팀의 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고는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단정한 얼굴이 생글거리는 웃음을 머금은 채로 불쑥 튀어나왔다. 편려원이 반쯤 들었던 총을 내려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팀장 양반? 지금 총 쏘려고 한 겁니까? 경찰이?
"놀랐잖습니까, 경사님."
"강청명 경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가 맡았던 사건이 끝났다는 거랑, 범인 송치하자마자 서장님 허락을 겨우겨우 받아내서 제가 팀을 옮기게 되었다는 걸 포함해서 말이죠, 헤헤."
"예? 그러면……?"
강청명 경사, 라고 신분을 밝힌 이가 꾸물꾸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밝은 얼굴로 거수 경례를 하며 자세를 반듯하게 잡았다.
"서부경찰서 형사팀에서 온 경사, 강청명입니다. 이 시간부로 카네 코르소 임시 수사 팀으로 배정받아 소속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림다!"
"아…… 망했네."
"류 경위님, 오랜만에 뵙는데 첫 말씀이 망했다니요!"
류시하가 더 골치 아파졌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강청명이 뭐라고 따지든 말든 잠시간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류비화는 자기도 옆팀에서 왔다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고, 편려원도 오랜만이라며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아마 저들끼리는 이미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갈해단은 크게 인사할 생각 없이 어정쩡하게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갈해단을 향해 먼저 고개를 돌린 이는 강청명이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누굽니까?"
"어? 아, 인사하십시오. 우리의 새.수.입니다. 새로운 수맥 탐지기라는 뜻입니다."
"세수라고요? 성함이 특이하시네요, 강청명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세수인 게 아닙니다, 경사님."
그러든지 말든지, 강청명이 악수를 청하는 듯 갈해단에게 손을 내밀었다. 갈해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누구인 줄 알고 이렇게 막 인사를 건네는지. 제가 경찰로 보이는 얼굴은 아니지 않나? 하다못해 좋은 인상은 아니지 않나? 경찰이 이렇게 경계심이 없어도 되나? 아니, 애초에 이 팀 진짜 괜찮은 건 맞나? 마주 잡아오는 손이 없자, 다시 손을 거두며 강청명이 슬 웃음을 흘렸다.
"세상 많이 좋아졌네. 경찰 소굴에 기어들어온 범죄자 새끼가 경찰 인사를 다 거절하고."
"……뭐?"
생글거리며 웃는 인상과는 완벽하게 다른,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화가 나 보이지는 않았다. 위협을 느꼈더라면 갈해단이 이렇게까지 풀어져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어이가 없어진 갈해단이 무어라 더 말을 꺼내려던 찰나, 류시하가 그 앞을 가벼이 막아섰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아예 화제를 돌리려는 모양이었다.
"손에 들고 계신 건 뭡니까."
"아, 이거요? 배드민턴채입니다. 팀 옮기기 전에 캐비닛부터 정리해야 해서요. 안에 이거만 달랑 들어 있길래 꺼내오는 참입니다."
"배드민턴이라고요? 강 경사님도 배드민턴 좋아하시나요?"
"웬만한 운동은 다 좋아합니다. 전에 육상 선수였거든요. 지금도 달리기는 자신 있습니다!"
"그렇다는데, 우리 배드민턴이나 치러 갈까요? 해결되는 것도 없고, 이럴 때는 머리 식히는 게 최고인데. 그렇죠, 팀장님?"
허락을 구하는 듯 류비화가 편려원 쪽을 돌아보았다. 편려원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보다는 훨씬 풀린 얼굴이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 이럴 때는 머리나 식혀야죠. 나갑시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된 것인데······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 맞나.
갈해단이 허공을 오가는 배드민턴 공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수사가 한창인 수사 팀의 쉬는 시간이라기보다는, 흡사 대회를 준비하는 팀의 쉬는 시간 같은 대화가 오가는 중이었다.
"헉, 팀장님 생각보다 힘이 좋으신데요?"
"기대치가 너무 낮으신 거 아닙니까? 제가 그렇게 비실비실해 보입니까?"
"그건 아닌데요, 으챠!"
"아직 멀었습니다, 공 끝까지 보십시오!"
이 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훨씬 대책 없는 곳일지도 모르겠고……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흐린 눈을 할 즈음이었다.
그의 옆으로 가벼운 인기척이 느껴졌다. 갈해단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류시하가 열로 달아오른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막 자리에 앉았다. 숨소리가 아직 거친 것을 보니 어디 달리기라도 하고 온, 아. 갈해단이 저쪽에서 배드민턴채를 들고 신나게 류비화 쪽으로 달려가는 강청명을 보고는 질문을 접었다. 류시하가 숨을 고르며 손에 들고 있던 주스 캔을 갈해단에게 내밀었다.
"드십시오."
"어."
길게 숨을 뱉은 류시하가 떨어지기 직전인 안경을 밀어올리며 제 몫의 커피 캔을 까 벌컥벌컥 들이켰다. 걸핏하면 밤샘 수사를 비롯한 초과 근무에 시달리는 팀에 소속된 만큼, 류시하 역시 체력이 떨어지는 축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이, 다 보통 수준이 우스운 체력을 가진 이들뿐인 걸 어쩌란 말인가. 여기 모인 사람들 중 체력이 가장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한 명은 취미가 펜싱이고, 한 명은 배드민턴 동호회 출신이고, 한 명은 육상 선수 출신이고, 한 명은 체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에 있던 사람인데. 생각해보니 뭔가 불공평하네. 류시하가 꺼림한 낯으로 커피 캔을 내려놓았다. 캔 표면에 맺혀 있던 투명한 물방울이 주르륵 떨어져 내렸다.
"시원할 때 드십시오."
"남 생각할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경찰도 할 일이 못 되네."
갈해단이 찝찝한 표정으로 제 손에 들려 있던 캔을 도로 류시하에게 건넸다. 여기 있다보면 더울 겁니다, 그거라도 드십시오. 류시하가 아직 열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정중히 사양했다. 갈해단은 이제는 아예 불편한 얼굴로 캔을 옆에 내려놓으며 시선을 같이 돌렸다.
갈해단은 류시하 같은 사람을 불편해했다. 선의와 정의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행하는 사람. 죄를 지은 자신까지 포용하겠다고 기꺼이 말하는 사람.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서 그러는 것도 아닌 사람.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도리어 손을 내미는 사람. 갈해단은 자신이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류시하의 시선을 마주하기를 굉장히 꺼렸다. 자신의 죄를 다 안다는 것처럼, 자신의 생을 꿰뚫어보는 눈. 그에 건방지게도 정의라는 잣대를 가져다 대려 하는, 그러나 너무도 명백한 인간찬가.
갈해단은 구원을 원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원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를 대놓고 갈구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자격이 없다. 그는 그리 여겼다. 그러니 기꺼이 기회를 주겠다고, 모든 이에게는 당연히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만 한다고 말하는 류시하가 불편할 수밖에.
문제는 류시하 역시 그를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까지 저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불편해 하시잖습니까, 저를."
갈해단이 고개를 획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류시하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무심한 시선으로 그를 마주했다. 색이 다른 검은 눈들이 정확하게 서로만을 응시했다. 하나는 검지 않았다. 류시하가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옳지 않으니 막아설 뿐입니다."
"나는 그쪽처럼 옳지 않고 어쩌고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데."
"그것도 압니다. 알아서 그냥 이러고 있는 거고요. 아니었으면 벌써 당신이 원하는대로 해드렸을 겁니다. 아니면 제가 원하는 대로 해버렸거나."
류시하가 원하는대로.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으나, 갈해단은, 그를 영원히 모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심하게 그를 응시하던 시선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류시하가 가라앉은 숨을 뱉으며 느릿하게 손부채질을 했다. 그의 시선 끝에서 배드민턴 공이 하늘을 날카롭게도 갈랐다.
"모든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걸 걷어차는 사람에게까지 억지로 기회를 쥐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도 결국에는 사람인지라."
"뭐, 나는 그걸 걷어차고 있다는 거냐?"
"아닙니까?"
고매하신 경찰님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보다, 같은 비아냥이 튀어 나가려다 목구멍에 턱 막혀 아래로 쑥 꺼져 버렸다. 갈해단은 그의 눈을 마주보고서는 당장 아니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류시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구는 일이 잦았다. 갈해단은 그를 보며, 그래, 불안해했다. 저 깊이 가라앉은 파괴적인 충동까지도, 언젠가는 들키게 될 것만 같아서. 다행스럽게도 그는 더 캐묻지 않는 일 역시 잦았다.
"저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당신에게 기회를 베풀 만큼 대단한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마땅히 가져야 했던 것이니 돌려받는 거고, 그렇게 당신이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어 한다면 돕겠다는 그것이 다입니다. 강요도, 동정도, 의무도 아닙니다. 호의도 아니겠습니다, 당신이 돌아서서 위협을 가한다면 가차없이 당신을 죽일 각오도 되어 있으니까."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린데."
"글쎄요, 정말 반가우실지는. 뭐, 그러니 한 번쯤은 생각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래야 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실 테니까. 류시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편에서 편려원이 그를 향해 손짓을 한 탓이었다. 짧막한 대화가 큼지막하게 오갔다. 뭡니까, 힘들어 죽겠는데 사람을 자꾸 부르고. 뭐기는, 경위님도 오셔서 한 판 해보자는 거죠, 사람이 좀 움직여야 활기가 돕니다. 활기가 넘쳐나다못해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인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과 움직이기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서 짧은 투닥임이 오고 갔다. 갈해단은 태연하게 등을 보이고 선 류시하를 바라보다 곧 시선을 돌렸다. 진짜 불편한 사람이다. 저래놓고 나중에 가서 딴말을 하는 일도 없을 것 같아서, 더욱. 그 불편한 사람은 류비화와 편려원 사이에서 한참을 시달리더니 결국 배드민턴채를 붙잡았다. 하기 싫어 죽겠다고 말하는 것이, 등에서부터 티가 났다.
"아우, 죽겠다. 안 더우십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이 새로 갈해단의 옆에 앉았다. 어쩐지 류시하만큼 껄끄러워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갈해단은 그에게 시선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갈해단은 구원 따위를 줄줄 읊어댈 사람이라면 애초에 엮일 일이 없기를 바랐다. 정말 모르잖아, 혹시라도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가고 싶어질지. 딱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런 사람들은 꼭 생각하지 못 한 곳에서 끈질기게 늘어지는 면이 있어서. 그런 갈해단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청명은 태연하게 배드민턴채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도 좀 놀다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류 경장님이 잘 놀아주실 텐데. 경장님 진짜 잘하시거든요, 전에 동호회 연습 게임에서 1등하고 당당히 돌아오시는 걸 제가 다 봤단 말입니다. 이야, 연습 게임일 뿐인데 어찌나 살벌하시던지, 아주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가서 구경이라도 좀 하시죠? 아, 날이 너무 덥나? 안 심심하십니까? 들고 계신 그건 주스입니까? 자판기에서 뽑아오셨나? 그거 류 경위님이 사다주신 거죠? 날도 더운데, 그거 식으면 밍밍해져서 별로일 걸요? 주스는 좋아하십니까? 저는 이런 때는 카페인을 때려넣으면 아주 쫙! 받아주는 게 좋은데 말입니다."
갈해단이 대답 한 번을 하지 않는데도 얼마나 혼자 잘 떠들던지, 강청명은 말 한 번 끊기는 일 없이 혼자 한참을 시끄럽게 재잘거렸다. 갈해단은 예상을 확신으로 바꾸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껄끄러워질 것 같더라. 취소, 이미 껄끄럽다.
"아까는 범죄자가 어쩌고 하더니 속도 없냐? 할 거면 하나만 하던가."
갈해단이 불퉁하게 툭 뱉었다. 강청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갈해단을 쳐다보았다. 그래, 보통 저런 반응하잖아. 저게 맞지.
"왜 반말이지?"
어, 맞는 말이네. 처맞는 말. 갈해단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강청명을 주시했다. 강청명도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를 마주보았기 때문에 갈해단은 그냥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듣기로는 이놈도, 저기서 배드민턴채를 열심히 휘두르는 둘의 후배라고 하던데. 젠장, 누가 아니라고 할까봐 눈이 아주 류시하를 똑닮았다. 사람을 꿰뚫어보는 것만 같은, 속에 심연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담긴 그런 눈. 정작 이쪽은 딱히 보여줄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거 좀 가지고 저를 경계하고 계신 모양인데에, 아니, 저는 범죄자를 범죄자라고 했을 뿐입니다? 맞는 말 좀 했기로서니, 참나. 저는 거창한 그런 거 모르거든요, 선배님들이 말씀하시는 정의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거, 헤헤."
"경찰이라는 놈이 그런 말을 막 하냐?"
"당신도 범죄자면서 우리랑 일을 막 하고 있잖습니까, 뭐가 문제입니까. 경찰이 정의니 뭐니 하는 거 좀 모를 수도 있죠."
거참, 박하시네. 강청명이 투덜거리며 손수건을 꺼내 흘러내리는 땀을 대충 훔쳤다. 그렇다고 뭐가 옳다 그르다 하는 것까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저를 아주 멍청하게 보실까봐 하는 말인데, 저 나름 똑똑하다, 이 말입니다. 선배님들도 그래서 저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셨죠! 아, 생각하니 또 빡치네, 에라, 썩을! 그러면서 또 뭐라고 혼자 떠들어댄다. 갈해단은 그냥 저러다 혼자 지치게 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나 반성할 기회를 받아야 하는 건 맞죠.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 이들은 기회가 아니라 처벌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에게 굳이 뭐라고 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 대신 편 경위님이 엄청 괴롭히실 거고, 저도 사실 적시야 뭐, 좀 하겠지만. 당신이 지은 죄는 사라지지 않지만, 어쨌든 당신 역시 사람이니까요."
"사람, 이라고."
"예, 어쨌든요. 당신도 뭐, 더운 날 시원한 거 마시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하면 즐거워지잖아요. 다 그렇게 사는 거죠, 떡볶이 좋아하십니까? 여기 근처에 학교 앞 분식집에서 파는 떡볶이처럼 만들어 파는 분식집이 있는데, 거기 진짜 끝내주거든요. 거기 데려간 사람 중에서 떡볶이 맛없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진짜로. 제 이름을 걸고 장담합니다, 이거 무조건 좋아하신다."
그 역시 사람이다. 갈해단에게서 그 이상만을 보려 하던 사람들 틈에서 듣기에는, 꽤 거창한 말이었다. 무어라 대답을 해야할지를 고민하던 갈해단은 옆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재잘거림에 곧 대답하기를 포기했다. 저대로 두면 알아서 또 사라지겠지. 건성으로 고개만 한두 번 끄덕이던 갈해단은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꺼림칙했고, 믿고 싶지 않았으며, 피하고 싶었고, 또 동시에 나쁘지 않았다. 정말 인간과 인간이 보내는 시간인 것만 같아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저편에서 류비화가 그를 향해 손짓했기 때문이다. 결국 체력을 다 소모하고 나가 떨어진 류시하를 대신해 강청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 앉아 있지만 말고 배드민턴채 하나 들고 오십시오! 경쾌한 목소리가 떨어지더니 그가 배드민턴채를 집어들고 그쪽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나 갈해단이 어디 그럴 사람이던가? 강청명은 아직 갈해단이 어떤 사람인지까지는 알지 못 하는 모양이었다. 갈해단이 그 낯선 등을 눈으로 잠시 쫓았다. 어쩐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시선을 보내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허, 애먼 남의 후배한테 어디 그런 흑심 가득한 시선을."
"흑심이 뭔지 모르는 거냐?"
"시꺼먼 놈이 그럼 마음은 하얗겠습니까? 이 시꺼먼 놈아."
"왜 잘 놀다 와서는 존나 시비냐?"
"당신은 저랑 안 놀아줬잖습니까."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워섬기며 편려원이 갈해단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갈해단이 드디어 미쳐버렸나,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편려원은 굳이 그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로 자리를 잡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배드민턴채가 바닥으로 고이 내려앉았다.
"아이고, 죽겠네. 혼자 앉아서 명상이라도 하셨습니까? 애들이 끌고 나오면 못 이긴 척 배드민턴채라도 들고 같이 놀아주실 줄 알았는데."
"할 줄 몰라. 그거 어떻게 쓰는 건데?"
"배드민턴도 해본 적 없습니까? 어렵진 않고, 그냥 이걸 들고 공을 패면 됩니다."
편려원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배드민턴채를 도로 들어 갈해단에게 쥐여주었다. 갈해단이 아직 미적지근한 온기가 남은 채를 들고 가볍게 몇 번 휘둘렀다. 어우, 사람을 패지 말고 공을 줘패라고요. 편려원이 기겁하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 갈해단이 심드렁한 얼굴로 채를 다시 내려놓았다.
"이런 걸로는 사람을 패봤자 금방 휘어져서 별 도움 안 될걸."
"경찰 앞에서 함부로 형량 늘어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공이 날아오는 대로, 여기, 이 그물 면으로 때려서 상대방한테 보내는 겁니다."
"힘만 빠지게 뭐 하러 이런 걸 하는 거냐?"
"잘 아시네요, 힘 빠지라고 하는 겁니다. 애들이랑 좀 해보시겠습니까? 좋아할 텐데."
"별로."
누가 별로일지 주어 없이 대답한 갈해단이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저편에서 그들을 주시하다 눈이 마주친 류비화가 손을 흔들며 해맑게 외쳤다. 팀장님, 해단씨한테 이상한 거 가르쳐주지 마세요! 편려원이 대충 손만 흔들며 허허 웃었다. 허허, 이 사람들이, 내가 이제 뭐 말만 걸면 이상한 얘기하는 줄 아네. 맞는 말 아니냐는 소리가 튀어나올 뻔 했으나, 경찰과 농담 따먹기를 해서 뭘 하자고, 갈해단은 마음을 곧 접었다. 잠시간 이어진 침묵을 깬 것은 편려원이었다.
"평화롭지 않습니까?"
"이런 걸 평화라고 부르나?"
"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치고는 상급의 것이죠. 그러니 느슨해지지 마십시오."
"내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너네가 느슨해질 수는 있어도."
"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범죄자가 결국 한 번쯤 거치게 되는 생각 아니겠습니까. 이만하면 죗값을 치렀겠지, 하는 그런 알량한 생각 말입니다."
이 새끼가 시비를 다채롭게 거네. 갈해단이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편려원은 그 시선을 마주하지도 않은 채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서, 어느 새 그림자가 길어진 셋이 이지러지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꼭 목적지를 아직 정하지 못 한 부유물 같았다.
"당신이라면 좀 느슨해지더라도 금방 돌아오겠지만, 돌봐야 하는 병아리들이 많은 입장에서는 언제나 최악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해서요."
"그 최악이라는 게 뭔데?"
"몰라서 묻습니까?"
"모르니까 묻지."
"생각입니다. 바람이 좋고, 날씨가 좋고, 평화롭게 앉아 있어도 되는 이런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
"아, 좋다. 행복하다. 그런 생각을."
그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 앉았다. 아무도 그를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거창했다. 대신 저편에서 한참을 뛰어다니던 이들이 이윽고 배드민턴채를 하나씩 손에 든 채로 둘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둘은 입을 열지 않았다.
*
아, 잘 먹었다. 배부른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강청명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계산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편려원이, 사장에게 카드를 내밀며 픽 웃었다.
"오늘 잘 놀았습니까?"
"네! 잘 먹었습니다!"
"항상 이렇게 첫날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류비화와 강청명이 화사하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류시하는 기력까지 다 떨어졌다는 듯 남은 떡볶이를 뒤적이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갈해단은 진심으로 이 팀이 이대로 유지되어도 괜찮은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편려원이 계산이 끝난 카드를 받고는 낄낄거리며 문을 열고 먼저 밖으로 나섰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까지도 떠들썩한 무리가, 물론 그 무리의 반만이 오디오를 담당했으나, 그 뒤를 따라 가게 밖으로 향했다.
밖은 벌써 어둑하게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뚝뚝 떨어진 별처럼 빛을 냈다. 그 아래를 지나는 이들은 덥지도 않은지 왁자하게 떠들며 한여름밤을 메웠다.
잠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던 편려원이 문득 한 자리에 멈추어 섰다. 가로등 불빛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뒤따르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그를 응시했다. 편려원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이들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마주했다. 편려원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 놀았으니 이제 일을 해야겠죠."
"예? 뭐, 그렇긴 하죠."
"새로운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내일부터는 이걸 시도해보죠."
"또 이상한 방법인 건 아니죠?"
"경장님이 마음에 안 들어하실 것 같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 어떤 손실도 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겠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듣고 생각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간단합니다. 우리의 손해를 줄이고, 아무도 다치지 않게, 그리고 합법적으로 진행하려면 이거 딱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편려원이 제 손을 들어 갈해단의 어깨에 턱 얹었다. 그 위에 그가 고개를 얹으니, 얼굴만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었다. 갈해단이 무슨 짓이냐는 듯이 그를 내려다보았으나 편려원은 아무렇지 않게 그를 넘기고는 앞에 선 병아리들을 바라보았다. 아, 참, 좋네, 이러면 안 되는데. 편려원이 슬 웃음을 지었다.
"벽천시를 팔아넘깁시다."
'[W::크로스오버] > 공조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Don't you really wanna feel alive? (0) | 2025.10.13 |
|---|---|
| Without mind of dawn (0) | 2024.07.03 |
| Taste your content (0) | 2024.05.14 |
| Fortune of ___ (0) | 2023.10.22 |
| , This race is a prophecy (0) | 2023.01.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