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전 로그 이후의 시간... 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공조즈 멋진 썰에서 나왔습니다 해단아 비화야 너희는 정말 갓캐란다
§ 주의: 범죄 미화, 폭력, 비윤리적 해석 등등
§ 다수 날조 포함. 퇴고 가볍게만 함. 급전개와 맞춤법과 비문 주의. 1만자 정도.
§ 제목은 Sub Urban의 Cradles 가사에서 따왔습니다.
사방이 해답 없이 어둡고 달만 의심스러이 노르무레하게 밝은 밤이었다. 편려원은 조각조각 부서져 떨어지는 달빛 속으로 담배 연기를 한차례 뱉었다. 거대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유려히 이지러지던 연기가, 빛을 벗어남과 동시에 완전히 흐트러지며 모습을 감추었다. 모든 것은 이렇게 사라지고야 말 것이니 한낱 정의조차 일시적인 가치일 뿐, 나직하게 속삭이듯이. 편려원은 당연히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나. 본디 일시적인 것이 가장 뜨겁다. 영원한 타오름은 없으니 영영 순간만이 가장 간절하다.
편려원은 시선만을 내려 아래쪽을 흘긋 살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폐건물로 들어오는 넓은 입구가 달빛을 받아 어수선하게 번쩍였다. 근처에 뵈는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편린 한 점이 없었다. 아직 안 왔나, 얘기한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하긴, 어차피 기다리는 건 저 뿐이니 오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허여멀건 연기 자락의 틈으로 핸드폰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새벽 두 시까지 이 분 남짓 남은 시각.
그가 오지 않는다면 바로 자리를 떠야겠다 생각했다. 상대는 퍽 까다로웠다, 이 접근 방향이 틀려먹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혹시 모르지, 이 주변에 번뜩이는 총구라도 쭈욱 깔렸을지. 편려원은 맹세코 제 목숨이 아까웠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제 목숨으로 장난질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닌데 이렇게 죽으면 범죄자는 누가 잡아 처넣는단 말인가. 그러니 아직은 신중을 기해야 했다. 언젠가는 그 역시 당연히 죽음을 맞겠으나, 아직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이 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미제 사건을 담당할 카네 코르소 팀이 임시로 만들어지고, 마땅한 돌파구 없이 어디서 굴러들어온 정보원과 함께 막다른 길에 도착할 즈음.
수사 종결로부터 한참이 지난, 심지어 뒷골목과 저 높으신 분들의 사정까지 얽혀 있는 사건이었다.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자연스럽게도 미미했다. 물론 믿음직한 후배들은 이런저런 생각을 내놓았고, 중간중간 어려움을 몇 번 돌파하기도 했다. 잠입 수사를 하자는 이야기는 깔끔하게 묵살당했으나 어쨌든.
"벽천시를 팔아넘깁시다."
언젠가 편려원은 후배들 앞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누군가는 눈에 기대를 띄웠고, 누군가는 또 개소리하네 하는 시선을 흘렸다. 물론 어느 쪽이든 신경을 쓸 그가 아니었다. 병아리 비슷한 것들이 삐약삐약 입을 열었다.
"벽천시를 진짜 팔아넘기자는 말씀은 아니죠? 저놈들한테 여기를 고스란히 넘겨주겠다고요?"
"당연히 아닙니다. 적당히 값을 쳐줄 것 같은 곳이 막 생각나서요."
"또 무슨 짓을 하시려고요."
"고물상도 아니고, 그런 곳이 있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이 품목도 취급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한 번 알아보고 다시 얘기하죠."
편려원은 그 길로 제 드림팀-그는 이따금 패러렐즈라고 불렀다-을 불러내 조사를 맡겼다. 얼마 전에 확보한 증언에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 꼬리를 잡아채면 분명 익숙한 도착점이 보일 것처럼.
증언에 따르면, 소속이 불분명한 이가 근처에 보였다가 사라졌다. 이전부터 벽천시를 통제하던 조직 세력 세 곳을 제외하고도 이 일에 새로 끼어든 존재가 있는 모양이었다. 독특한 점은, 그가 지팡이를 짚은 노신사의 복장이었다는 것. 편려원은 이에 주목했다, 예전부터 주시하던 특이점의 특징과 동일했으니까.
그는 대형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이전의 연에게서 한 번 귀띔 받은 존재였다. 편려원은 편의상 그를 '소섭宵攝'이라 이름지었으나, 귀띔은 그를 '시대에뒤처진전제군주정능구렁이늙은이새끼'라 불렀다. 그 새끼는 거기 처박혀서 고인물로 존나 오천만년씩 처남고 그럴 새끼가 아니에요, 분명히 새로 자리 잡을 곳 찾아서 건물 보러 댕기는 부잣집 도련님 맹키로 이런 씨발 또 생각하니까 존나게 재수가 없네 씨발 여튼 이리저리 뒤지게 돌아다닌다? 잘 봐둬세요, 나 미리 경고해줬당? 아주매우씨발존나개상냥하게?
경찰이 다시 사건을 맡기 전부터 얕은 관심을 보여왔지만 한 번도 직접 끼어든 적은 없는, 신생 세력. 제대로 본 이도, 아는 이도 없지만 거대한 뒷배를 가졌을 사람. 그 뒤를 캐낼 능력을 가진 자가 없을 것을 알아 모습을 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이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특이점.
그는 벽천시에 흥미가 있는 듯 했다, 주변에서 계속해서 목격 증언이 나왔으니까. 올라오는 보고는 꽤 기이했다. 왕이라는 단어를 쓴다.
편려원은 그가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되리라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 열쇠의 일부가 되리라 생각했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뚫어야만 했다. 그래서 편려원은, 대뜸 그와 부딪쳐 보기로 했다. 알려진 정보가 없으니, 우선은 부딪쳐 깨지더라도 그 반향음이라도 모아야 할 게 아닌가.
"502, 좀 움직여 주셔야겠습니다. 별아, 네가 먼저 접근해보고."
"가서 뭐라고 하면 됩니까?"
"벽천 쪽으로 할 얘기가 있으니 이때 만나자고 해주십시오."
"거절하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수락하는 기색이 보일 때까지 달라붙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거 진짜 진지하게 명령이신지? 진짜 쟤를 그렇게 써먹으시겠다고요?"
"이 일은 사회성 부족이 맡는 게 낫습니다."
"아, 오케이. 이해했어요."
"이걸로 이해하지 말라고."
사흘 후에 보고가 올라왔다. 얘기는 전했으나 그 뒤로 유의미한 거취가 보이지 않아 추적 중입니다. 저희를 따돌리려는 것 같습니다. 편려원은 계획이 반쯤 성공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조차 완연한 절반은 아니었고, 나머지 반틈에는 무엇이 숨죽이고 있을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편려원이 오늘 이곳에 나온 것은 사실상 도박에 가까웠다. 붙어버린 벌레를 단순하게 죽이느냐, 아니면 죽이기 전에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지느냐. 가능성은 언제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였으므로.
그리 생각이 흐르던 사이 일 분이 금세 지났다. 편려원은 주차장 너머의 입구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여전히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역시 섣부른 시도였으려나. 편려원은 거의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으로 떨어뜨려 느릿하게 짓밟았다. 구두코 즈음에 힘을 주어 즈려밟자 미약하게 탄내가 새었다. 완전 초쳤네, 그만 철수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연기를 내뱉은 그가 돌아서려 몸을 돌린, 그순간이었다.
다각.
무언가 딱딱한 것이 바닥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자그마한 소리는 여유롭게, 그러나 느리지 않게 이어지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아래에서 위로 걸음을 하는 듯이, 소리가 묘한 나선을 그렸다. 위로 올라오는 계단이 저편에 있었음을 떠올리던 편려원이 미심쩍은 눈으로 다시 핸드폰 화면을 응시했다.
두 시. 정각인 시계 숫자가 눈을 마주친다.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와주기를 바라진 않았는데."
뭐, 좋아. 편려원이 중얼거렸다. 결석보단 낫지.
그리고 그 중얼거림에 마침표를 찍듯, 저편에서 무언가 바닥을 짚는 소리가 났다.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울리는 걸음 소리는 시커먼 악의를 뚫으며 전진하는 듯 들렸다. 잘 뵈지도 않는 저편, 건물의 끄트머리에서 들려오는 공음은 같은 시야를 나눈 듯 거리감을 눈멀게 했다. 불온한 암흑을 헤치고 달빛조차 없는 공간을 주욱 더듬는 걸음새는 그 윤곽만이 희끄무레하게 비쳤다. 발소리에 이어 들리는 자그마한 소리⋯⋯ 아, 지팡이를 짚는 소리임을, 편려원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 새에도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이내 걸음이 멎었다.
"⋯⋯."
달빛이 훤히도 비치는 곳까지 친히 걸음한 사내는 꼭, 이 시대를 사는 이 같지 않았다. 머리에 쓴 탑햇은 달빛을 받아 불투명한 광택을 냈다. 고딕 톤의 정장으로 보이는 옷차림 위로 걸친 코트는, 면적이 넓어 차라리 망토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이 시대의 것이 아니었으나, 그 아래로 보이는 구두는 어찌 이 시대의 색을 띄는 듯도 했다. 허리까지 오는 높이의 지팡이는 누가 보아도 사내의 나이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 조합이었다. 속에 새카만 늙은이가 들어차기라도 했나. 편려원은 당황을 표출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는 체구도, 키도 편려원보다 작았다. 얼굴은 앳되다 못 해 어려 보여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사내는 편려원의 상상과는 거리가 퍽 멀었다. 아주 옛날 어드매 즈음에서 방금 걸음해 그의 앞에 선 것처럼. 그는 즉, 지금 편려원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것은, 왕이 군림하던 시절에나 존재했을 긴장감이라는 뜻이리라. 이걸 상상한 건 아닌데, 들은 거랑은 너무 다르잖아. 하여간 그 자식은 쓸데없이 선입견이 없어서.
그를 빤히 보던 사내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 입매 끝에는 달의 온기 같은 미미한 미소가 걸린 채였다.
"꽤 버릇이 없구나."
"⋯⋯뭐?"
"원하는 게 있어서 나를 예까지 불러낸 게 아니냐. 그런 주제에 인사도 먼저 꺼내지 않고."
명백하게 우위에 선 인간의 태도였다. 자칫 긴장을 놓았더라면 기가 찬 웃음을 토할 뻔했다. 말에 틀린 것이 없어서였다, 지금 당장 아쉬울 쪽은 당연히 저였다. 저 나이에 왕이라는 단어를 쓸 법도 하네. 편려원이 가벼이 고개를 까닥였다.
"내가 생각을 잘못 했네, 너 같은 게 나올 줄은 몰랐다."
"나도 이렇게 하나하나까지 가르쳐야 할 줄은 몰랐다, 공권력이라는 보잘것없는 것들과 연이 끊긴 지 제법 되기는 했다만. 요즘 경찰들도 죄다 그대 같은가?"
"아니, 다 이렇지는 않고. 그래봤자 너도 범죄자일 뿐인데 내가 뭐 하러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나 싶어서."
"신경을 쓸 때가 되면 달리 하겠다는 말이로구나.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치야, 앞서 내게 왔던 아이도 그렇고."
사내는 못마땅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검푸른 머리칼이 그 바람에 사락거림을 담고 흔들렸다. 그 모습이 퍽 그 나이 또래의 아이처럼 보였던지라 편려원은 잠시 여기서 마음이 흔들려야 마땅한지를 고심했다.
"그 하얀 머리 아이도 그대의 작품이겠구나. 어찌나 귀찮게 구는지, 꽤 고생하였다."
"뭐, 내 야심작 중 하나긴 해. 우리 애들이 워낙 너를 싫어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애들? 바쁘겠구나, 하나만 해도 품이 어지간히 들 텐데. 그 정도면 더 들 테고."
사내는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는 듯 보였다. 편려원은 정말로 소년 같은 이 사내가 몇십 년을 이미 살진 않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변장했나? 아무리 봐도 저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영영 소년일 것 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영영 군림하는 이의 표정과 단어를 자아내는 그 모양새가. 마치 인간이 같잖다는 것 같지 않은가. 편려원이 묘한 표정을 지을 즈음, 사내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지팡이를 가벼이 휘둘렀다. 휙, 자그마한 바람이 그의 발치를 스쳤다.
"됐어, 시답잖은 인사는 여기까지 하지. 그래서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 귀찮으니 한번에 답을 들어야겠다."
"사실 정말 나올 줄은 몰랐어, 도박에 가까웠지. 그래서 네 뒷꽁무니 쫓아다니느라 고생하기도 했고."
"돌아가면 아이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거라, 나를 그리 애타게 찾는다기에 우스워서라도 나와준 것이니."
"그러려고. 뭐, 그런 김에 용건을 말을 하자면⋯⋯"
편려원이 느릿하게 말을 늘어뜨리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달빛에 비친 사내의 눈은 온연히 검었다. 이미 암흑으로 손을 물들인 것 같이. 편려원은 그제야 인정했다. 이놈은 지금까지 봐왔던 것들과는 다르다. 본격적으로 팀을 움직여야만 할 테다. 그러니 이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다, 증거로 채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카네 코르소 팀만 움직여야 해⋯⋯ 편려원이 계산 없이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심드렁한 태도였다.
"네가 벽천시에 눈독을 들이는 건 알고 있다."
"둘러본 것뿐이거늘. 모름지기 왕이라면 백성들의 생활을 살필 줄도 알아야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좀 알고 있냐?"
"그래, 종이 다른 것이 세 개가 있지."
"그걸 파고들려고 하는 거지? 끼어들 틈을 줄 테니 우리가 싹 쓸어가게 해줘. 용건은 이게 전부다."
나른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사내의 눈이 한순간 변했다. 편려원은 사내가 찰나간 웃었다고 생각했다. 마치 꿈에서 깬 듯한, 날이 시리게도 서린 차가운 목소리가 그를 시퍼렇게 내리쳤다.
"그리고 그동안 그대들은 나를 파헤치고?"
등골이 순간적으로 오싹해졌다. 왜 알고 있지? 아니, 어떻게 알고 있지? 하마터면 편려원은 부정을, 그러니까 당황을, 내놓을 뻔했다. 그런 답이 먹힐 상대가 아니었으니 되려 손해만 볼 터였다. 고뇌로 짧게나마 생겨 버린 답의 공백이 못내 아쉬웠다.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 편려원은 아쉬운 마음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여기까지 와서 여유를 잃을 이유는 또 없어서.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네? 벌써 우리 안에 끄나풀이라도 있나?"
"왕은 언제나 원하는 걸 얻지. 내가 그리 공들여 준비를 할 이유가 무어 있으려고."
"그러면서 여기저기 관심은 많으신데. 그러니까 우리도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보장을 받지."
사내는 그 대답이 영 성에 차지 않는 듯 보였다. 못마땅하다는 듯, 혹은 귀찮아 죽겠다는 듯 흥미가 가신 눈으로 손을 내저었으니. 조금만 더 소섭이 손을 썼다면 아마 지금쯤 저 지팡이 끝엔 제 모가지가 걸렸겠지. 편려원은 새삼 이 도박이 위험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그만둘 생각은 없었고.
"고이 바칠 성 싶더니. 그렇다면 무엇 하러 왕을 찾았느냐, 마땅히 목줄을 걸 만한 아무 것이나 잡아두면 될 것을."
"그것도 고려는 해봤어. 그런데 우리 애들이 좀 사나워야지, 뭐. 목줄이 안 걸려. 그럴 바에는 차악을 택해야지."
"하, 아직 허락도 받지 않았구나. 그런 주제에 나를 그리 귀찮게 굴었단 말이냐?"
"널 미리 떠봐야 나도 승산이라는 걸 계산을 하지."
"참⋯⋯"
한숨을 내쉰 사내가 편려원을 바라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편려원은 그의 눈짓 끝에 걸린 제 목숨을 관찰했다. 사내는 고민하는 게다. 당장 이것을 죽일지 말지. 귀찮은 일을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끝자락을 베는 것. 이 애매한 침묵을 깨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잠시 들었다. 목숨을 버리고 얻을 게 없는데, 이거 어쩌지. 그냥 지금 이놈부터 해치워? 그 역시 사내의 목숨을 칼날 끝에 올려볼까 하는 고민이 들 즈음,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 하지."
"뭐?"
"두 번씩이나 귀찮게 하지 말아라. 이미 그대의 무례는 목숨으로 대신할 수준을 넘어섰으니까. 요즘 공권력이 이리도 천박할 줄이야."
"다 나 같지는 않다니까? 그보다 무슨 속셈이지?"
"해주겠다고 해도 난리구나. 싫다면 돌아가마."
"아니, 수상하잖아. 순순히 오케이 하는 게."
"하긴, 이번은 유독 자비가 많았지. 그대가 아직 내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내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인심 좋은 짓을, 단순한 호의로 내어주고 있다는 듯이. 편려원은 마침내 사내를 보는 제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았다. 그래, 꼭 그 새끼를 볼 때와 똑같은 기분이 아닌가. 살아숨쉬는, 마치 인간 행세를 하는 악을 목도할 때의, 갱생 따위는 애초에 불가능한 순수한 악의를 마주할 때의⋯⋯ 더럽게. 사내가 말을 이었다.
"되었다, 그대들이 움직일 것을 아는데 내가 어찌 그 길을 읽지 못 하겠느냐. 그대들도 기회 정도는 있어야 공평하겠지. 마음껏 해보거라."
"와, 진짜 무슨 허락이라도 받는 것 같네."
"당연하지 않아, 나는 그대들의 왕이고 그대들은 나의 백성이거늘. 그래, 혼자 다니는 아름다운 이를 보거든 조심하고."
"그건 또 누군데?"
"보면 알 것이다, 그대조차 한눈에 아름답다고 느낄 테니까. 머리가 검고 눈에 보랏빛 이채가 있다."
어떻길래 보자마자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거야? 편려원이 의문만이 남은 조언을 곱씹든 말든, 사내는 더 이상 흥미가 없다는 듯 그대로 몸을 돌렸다. 돌아선 사내의 앞으로 툭, 정각이 되었을 적에 들린 지팡이 소리가 떨어졌다. 다각, 사내의 발소리가 사내를 점점 어둠 속으로 숨길 즈음⋯⋯ 달빛 한 조각 비치지 않는 곳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그 아이는 잘 있느냐."
"아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때 내 백성이었던, 것이겠지."
"무슨 말이야, 우리 안에 네 아이가 있다고?"
"이번 일은 내 마지막 자비이기도 해. 그곳은 그놈이 있던 곳이니까."
"그놈이라면,"
"알고 부른 줄 알았더니. 하긴, 기록조차 없이 그를 거두었으니 무리도 아니지."
"좀 알아듣게 말해라."
"그놈은 알아들을 것이다. 여전히 나의 백성임을 잊지 말라고 전해라. 잘 보살펴주고."
얻을 게 없다면 재미라도 있어야지. 사내가 말을 마치자 다시 어두운 허공에서는 다각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점점 멀어져가는 소리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짓던 편려원이, 문득 벼락같이 깨닫고는 인상을 팍 썼다.
"이제 내 패거든?"
그러자 암흑 속에서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말 소년의 것만 같아 편려원은 소름이 끼쳤다.
"어리석기는."
이윽고 소리가 사라졌다. 이번은 작아지는 파음조차도 없었다. 사내는 온 적도 없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완연한 공백이 홀로 남은 이를 비추었다.
편려원은 허공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다 곧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배드게이트, 철수합시다."
- 이제 철수합니까? 배드웨이한테 연락은 받으셨습니까?
"아니, 왜? 무슨 일 있었습니까?"
- 근처에 저 말고 다른 저격수들 쭉 깔렸으니까 숨도 쉬지 말라고 연락 왔었습니다. 머스킷은 깔아뒀습니다만.
"저격수?"
- 예. 지금은 철수한 것 같다 합니다.
이걸 읽네? 편려원은 영 찝찝한 낯으로 고개를 돌려 저앞으로 내다보이는 입구를 주시했다. 역시나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그림자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저격수를, 그것도 여럿을 깔아? 이 정도면 두 수는 읽힌 건데.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못 본 것 같으니까."
- 그럼 철수하겠습니다. 아래로 내려오십시오.
"예, 배드웨이한테 연락 넣어주십시오."
통화를 끊고는 핸드폰 화면에 뜬 붉은 버튼을 눌렀다. 어디선가 치익, 불이 꺼지는 소리가 났다. 참, 그놈도 진짜 징하네. 어쩐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이더라, 이걸 읽네.
"한 번 움직이려면 저격수 엄호가 있어야 할 만큼의 거물이라⋯⋯ 젠장, 후배님들이 더 싫어하시겠네."
이제 이걸 어떻게 허락 받을까. 얘기한 대로 벽천시를 팔아넘길 겁니다, 상대는 이미 섭외해뒀고요, 그러니까 그냥 하자는 대로 합시다, 이렇게? 이런 얘기하면 우리 팀에 새 팀장이 들어앉을 것 같은데. 강 경사님은 그래도 좀 들어주시려나. 아니다, 또 혼자 움직였다고 잔소리 하시겠지. 아직 다 크려면 한참 남은 병아리들이 하여간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은지. 이런저런 생각을 마무리 한 편려원은 느릿하게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낮은 구두굽 소리가 새벽 달빛이 서린 건물을 공허하게 울렸다.
"어느 쪽이든 좋아."
마지막에는 반드시 우리가 이길 테니. 편려원은 중얼거리며 오른손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정확히 새벽 두 시 반을 읊었다. 시계 유리면에 비친 그의 눈가에 붉은 날이 서렸다. 옷차림을 한차례 가다듬은 그가 걸음을 마저 옮겼다. 촘촘하게 발소리가 들어차며 늘어지는 걸음 간을 메웠다. 무너진 벽 새로 들이치는 달빛은 여전히 누르게도 눈이 시렸다. 저편에서 총구가 거두어지는 무음이 울렸다.
이윽고 달빛이 발자국 두어 개 사이로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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