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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폭력, 폭행, 상해, 부상, 약한 텍스트 유혈 표현, 인간을 향한 비윤리적인 사상 및 대우, 일부 범죄 미화, 폭언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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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
편려원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삑, 열세 번째로 울렸던 벨이 끊겼다. 옆에 있던 강청명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의 류시하와 류비화 역시 얼굴이 밝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을 깨듯 류비화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연결이 안 되네요."
"어쩌면 실패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러게 그거 제가 같이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청명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지 않는다는 무언의 항의였다. 바로 옆에 임시 팀장이 있음을 감안하면 그리 무언도 아니었으나, 어쨌든.
정작 편려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검은 핸드폰 화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검은 눈이 허공을 날카로이 갈랐다. 무얼 잘못 계산했나? 이럴 리가 없는데. 고작 이런 곳에서 실패할 패라면 애초에 거두지도 않았다. 한 번 쓰고 버릴 패를, 제가 구분하지 못 했을 리가.
갈해단에게서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 대략 열 시간 전에.
지속적으로 언급했던 투견장. 현대 뒷골목에 부활한 콜로세움. 얼마 전 네코 팀은 그 안으로 잠입하자는 작전을 논의한 일이 있었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갈해단은 혹여나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하는 이가 생긴다면 그를 도맡아 하겠다고 단언했다. 거기 내가 아는 애 있어, 얘기하면 루트 정도는 뚫어줄지도. 재수가 없으면 대타를 구하든지. 그건 재수 좋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후배님이 들어가실 거 아니면 조용히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를 합의하기까지는 많은 고뇌와 설득이 필요했다. 류비화는 위험하다고 딱 잘라 말했고, 류시하는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으나 혼자 맡기기에는 불안하다고 말했으며, 강청명은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편려원은 처음부터 그 말에 반대하지 않았기에 나머지를 전부 혼자 설득해야 했다. 우선 갈해단이 먼저 잠입을 시도한 후에 그 결과에 따라 나머지도 움직이자고 결론이 나기까지는 몇 시간이 걸렸다.
편려원으로서는 당연히, 생각해 볼 가치도 없었다. 첫 수를 두려면 폰이나 나이트를 움직여야지. 처음부터 룩과 비숍이 기물을 넘어갈 수는 없다.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폰이 이미 손에 들어왔는데, 굳이 다른 수를 쓸 이유가 무엇인가.
구태여 입 밖으로 낸 일은 없으나 임시 팀장 직을 맡은 순간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팀에는 영영 정식 팀장이 들어설 일이 없겠다고. 서류상으로야 어느 것 하나 책잡힐 것 없이 진행되겠지. 윗선을 잡는 일이 다 그렇지 않나. 그러니 이는, 그 나머지 절차는 어느 정도 눈감아주겠다는 암묵적인 허락이다. 어떤 수를 써서든 그 위를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오로지 그 목적만이 유의미할 뿐. 그러니 편려원은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상부라는 놈들은, 먹이만 주면 무엇이든 냅다 물어제끼는 저 같은 사냥개를 잃기 싫을 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물어뜯을 것을 알기에 임시 팀장 자리에 앉혔을 테니까. 전부 드러나지는 않는 선에서, 그러나 합법적이게 일을 진행시키겠지. 말 그대로, 그 어떤 수를 쓰더라도.
편려원은 언제나 계산하지 않았다. 범죄자를 합법적으로 처벌하기 위해 경찰이 되었음에도, 법이라는 울타리는 제 기회마저 빼앗아 가는 일이 잦았으므로. 굳이 저만의 팀을 따로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관련된 놈들을 잡아넣을 수 없다면 죄다 쏴죽이기 위해서. 처벌은 당연히 재발과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러니 어떻게든 처벌만 할 수 있다면 못 할 것이 무엇 있으려고. 게다가 이미 제 팀과 소섭의 협력을 쥐었으니, 이번 일도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해결하지 못 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편려원은 최대한 많은 놈을 잡아 처넣고 싶었다. 그러나 눈앞의 새파란 햇병아리들은 언제나 원칙과 정의를 잊지 않았다.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놓아두고 굳이 법이라는 어려운 길만을 찾아갔다. 마음 같았으면 죄 죽여버리고 말았겠으나 그들은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어쩌겠나, 이 사건은 결국 후배들을 위한 것. 그들이 자라날 발판이 되어, 나중에는 그보다 더욱 유능해지기 위한 경험 중 하나일 뿐. 그러니 웬만한 선에서는 그 적법이라는 우스운 울타리 위에 고개를 들이밀어야 했다. 편려원이 그를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알겠습니다, 이해는 했어요. 하지만 이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저라도 같이 가겠습니다."
"허가할 수 없습니다. 이번 현장에는 갈해단 씨, 하나만 참여합니다."
"팀장님! 이번 건은 혼자 가기에는 너무 위험해요!"
"경위님!"
"어허, 이 햇병아리들이 어디서 삐약거립니까.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괜찮은데."
"들으셨죠? 본인도 괜찮다고 하잖습니까?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뭐. 분위기도 살펴봐야 하고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게 많습니다, 들켜서 좋은 일이 없어요. 우선 하나, 나머지는 그 뒤에 생각합시다."
갈해단이라는 새로운 패에 구태여 손대지 않은 일 역시 그러했다. 굳이 그들 사이를 파고 들도록, 그저 놓아두는 이는 저 하나뿐이도록 놔둔 것은, 순전히 후배들을 위해서였다.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그나마 적법한 절차, 언제든지 후배들을 대신할 수 있을 패, 정의와 절차가 무엇인지를 떠들 수 있도록 내어주는 수단. 그래, 갈해단은 결국 후배들에게 내어줄 새로운 기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하나를 잃을지 모른다고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것들을 위험한 현장으로 내보내겠다고? 아니, 편려원으로서는 당연히, 생각해 볼 가치도 없었다. 허가는 어디까지나 후배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 내어주는 것. 잃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연히 따로 존재했다.
그랬는데. 지금 그 하나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무사히 빠져 나왔다면 세 시까지 연락이 와야 했는데, 지금 시각은 새벽 세 시 삼십 분.
편려원은 검은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내가 이놈을 과대평가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이번 작전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들켰을 때 잃을 게 많아서 그렇지. 그래서 튀어 나가려는 후배들도 한사코 막았는데. 실패했나? 고작 이런 걸로?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 계산했지?
"찾으러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삼십 분이 넘게 지났습니다, 뭐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고요."
"맞아요, 지금 나가서 상황이라도 봐야 합니다. 어떻게 되었는지라도 알아야죠."
강청명이 걱정스럽다 못해 답답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류비화가 어렵지 않게 맞장구를 쳤고, 류시하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앉아 편려원을 응시했다. 류시하는 꼭 무언가를 가늠하는 것만 같았다, 편려원이 지금까지 그리 해왔듯이.
편려원이 이내 고개를 들었다. 드물게 피곤해 보였다.
"허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경찰 병력이 노출되어봤자 좋을 게 없습니다."
"경위님도 기껏 손에 넣은 패라고 하셨잖아요, 그걸 지금 잃게 두시겠다고요?"
"잃어야 한다면 감수할 겁니다. 못 할 거 없죠, 처음부터 없었던 게 갑자기 생겼을 뿐인데."
"해단 씨도 사람이에요, 사람이 지금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걸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말씀이세요?"
"예, 내버려 둘 겁니다. 팀원이 죽는 것보다는 사람이라는 인식도 없는 게 죽는 게 낫죠."
"팀장님!"
"강청명 경사님, 류비화 경장님. 인간이 죽었고 작전이 실패해서 안타깝다는 것까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하나 때문에 죽으러 가실 겁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당신들은 경찰입니다. 그놈은 범죄자고."
"범죄자라는 이유로 죽는 게 아무렇지 않아야 하나요? 그러면 세상에 살아 마땅한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점점 언성이 커져 가자 덜컹, 침묵을 지키던 류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밀려나는 쇳소리에 말을 잇던 이들이 전부 류시하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세 쌍의 눈을 마주하던 류시하는 류비화와 편려원에게 좀 떨어지라는 듯 손을 휘적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적당히 하십시오, 용용체를 쓰시든지. 지금 우리끼리 언성 높여봤자 뭐 합니까, 이미 작전은 실패했다는데."
"류 경위님, 지금,"
"예, 압니다. 저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라도 더 살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부 열이 오른 채로는 안 됩니다. 보통 이럴 때 누구를 살리려다 다 죽거든요. 갈해단 씨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연락 안 오면 죽은 줄 알라고."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닌데도 굳이 죽은 줄 알라는 말을 했다면, 그만큼 위험한 곳인 겁니다."
"경위님."
"이대로 손 놓고 있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좀 진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전부 다."
"⋯⋯."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십시오. 류 경장님, 강 경사님, 두 분 다."
"지금 이럴 시간 없습니다, 선배님."
"이럴 시간 없이 나갔다가 다 뒤지고 싶은 거 아니면 당장 나가십시오. 전부 진정되고 나면 같이 출발하는 것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거 부탁 아닙니다."
"⋯⋯."
"지금 당장."
결국 강청명과 류비화가 한숨을 뱉으며 회의실을 나갔다. 달칵, 닫히는 회의실 문을 보고서야 류시하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편려원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미묘하게 기운이 빠진 목소리였다.
"누가 보면 진짜 팀장님인 줄 알겠네."
"저한테 뒤집어 씌우지 마시죠, 편 경위님이나 하실 법한 일 아닙니까."
"꼴이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허가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는데 누구 명령으로 나가는 걸 고려합니까?"
"그 근처로 순찰 도는 정도는 할 수 있잖습니까, 딱 그 선까지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전에 경위님과 순찰 범위를 논의할 생각이었고요. 그래서 나가라고 한 건데, 피곤하십니까?"
이런 건 매번 저보다 빨리 알아채던 양반이. 류시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편려원을 바라보았다. 편려원은 말없이 그를 마주하다 안경을 벗고 마른 세수를 한 번 했다. 속에서 치솟는 것을 애써 달래기라도 한 듯 피곤해진 낯이 손에 가려졌다 도로 나타났다. 금방 평소대로 돌아왔으나.
"아뇨, 그냥 신경을 많이 썼더니 잠깐. 저도 압니다, 경위님이 저만큼이나 후배 잃는 꼴 못 보신다는 것 정도는."
"잘 알면서 뭘 물어보십니까, 다 알아서 내버려 두시는 줄 알았는데."
"알죠, 아는데⋯⋯ 병아리들이 감당이 안 된다는 것도 알거든요."
"스스로가 걱정이 많은 편이라는 것도 좀 알아주시죠."
"류 경위님, 저 어린 놈들은 세상 험한 줄도 모르고 생명이면 다 중하다고 여깁니다. 범죄자나 경찰이나 하나같이 다. 그러다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뒤통수 맞을 각오까지 하고 그런다고요."
"생명은 다 중한 게 맞습니다, 편 경위님. 그리고 경찰은 원래 그런 각오를 해야 하는 직업이고요. 죽을 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경찰이 있는 겁니다."
대화인지 푸념인지 모를 것이 나직하게 오갔다. 편려원이 한숨만 내쉬고 대답이 없자 류시하가 느릿하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 역시 드물게 피곤한 얼굴이었다.
"역시 피곤하신 것 같습니다, 경위님. 잠깐 쉬고 오십시오."
"안 피곤합니다."
"거짓말을 하실 때는 좀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십시오. 댁에라도 잠시 다녀오십시오, 그때까지 저 둘 목줄은 제가 잡고 있겠습니다. 별일 없을 테니 걱정 마시고 좀 주무시고요. 벌써 이틀이나 못 주무셨잖습니까."
"집에요? 여기서요? 갑자기요?"
"고양이 테라피 좀 하시라고요. 저도 경위님 돌아오시면 집에 갈 겁니다. 슈뢰딩거 보고 싶어서요."
류 경위님이 집에 가겠다고 하시는 걸 보면 진짜 피곤한가 보네요, 중얼거리며 편려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죄다 이틀 밤을 샜으니. 제정신이 아닌 게 정상이지. 어쩐지 머리가 안 돌아가더라니. 편려원이 뻑뻑한 눈을 한두 번 깜박이며 천장을 응시했다. 머리를 굴리겠답시고 천장의 타일로 만들 수 있는 정사각형의 개수를 세어보다 열셋에서 결국 포기했다. 이건 잠으로 해결하는 수밖에는 없겠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고양이 테라피는 중요하니까."
"못 주무신 거 티내지 말고 가서 주무시라고요."
"아, 그리고, 류 경위님.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예."
"저는 이틀 아니고 나흘 밤 샌 겁니다."
"⋯⋯가서 주무시라고요."
*
삑삑, 삑삑삑, 삑. 달칵.
알림음이 다 끝나기도 전에 편려원이 인내심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나흘 밤을 새다니, 이것도 정말 못 할 짓이다. 하루는 햇병아리들이랑 원래 새야 했고, 하루는 이상이 생겨서 보초를 서야 했고, 나머지 이틀은 다른 사건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예상치 못 하게 갑자기 이렇게까지 바빠질 줄이야,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증원 요청을 하든지 서장님 책상을 엎든지 502를 부르든지 했을 텐데─
그리고. 편려원이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수면 부족으로 멍해진 머릿속에서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알아채지도 못 한 새에 손이 권총을 빼들었다.
피 냄새다. 깨닫지 않을 수가 없는 냄새.
공기 중에 피 냄새가 감돌았다.
그리고 현관에 놓인 이 처음 보는 신발은 뭐지?
형의 사이즈도, 제 사이즈도 아닌데.
편려원은 잔뜩 날을 세운 채 소리도 없이 권총의 잠금 장치를 풀었다. 설마 여기까지 들켰나. 그놈들에게 분명 이 정도까지의 정보 수집 능력은 없을 텐데? 어느 새에? 형은? 괜찮은가? 설마 벌써 당했나? 그렇다면, 정말 지키지 못 했다면, 그러면 당장 죄다 쏴죽이는 한이 있어도─ 애엉.
애엉?
편려원이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고양이였다. 우리의 귀여운 검은 고양이, 게슈탈트.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다 깼는지, 방금 일어나 잔뜩 잠긴 목소리로 애웅거리며 편려원의 발목에 몸을 부비고 있었다. 아, 탈트가 멀쩡하네? 그러면 형도 괜찮은 건가. 편려원이 경계를 조금 늦추며 몸을 숙여 탈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에 머리를 한 번 꿍 박은 게슈탈트는 만족한 듯 우르륵, 하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편려원도 그제야 신발을 벗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괜찮은 것 같으니 윤이 형부터 확인해야겠다. 그러고 나서 씻고 자든지 해야지. 형이 문을 잠그고 자는 사람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편려원은 조용히 윤의 방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낯선 모습이 보였다.
침대에 모르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누구지? 편려원은 여전히 총을 든 채 발소리를 죽여 안으로 들어갔다.
갈해단이었다.
어라?
다시 봐도 갈해단이었다.
어라?
그러자 침대 옆에 모로 기대어 잠들어 있는 사람도 보였다.
윤이었다.
어라?
다시 봐도 윤이었다.
어라? 윤이 형?
작전 실패로 죽은 줄 알았던 놈이 퇴근 후 집에 오니 누워서 자고 있습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저놈은 왜 저기 있고? 형은 왜 같이 있어? 편려원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려다, 총이 이마에 걸려 소리를 내자 다시 손을 내렸다. 아, 맞다, 총. 얼떨떨한 표정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잠금 장치도 어쨌든 다시 걸었다. 사람 몇 정도는 치울 각오도 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일단 병아리들한테 연락부터 넣고. 편려원은 문을 닫고 도로 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 예, 경위님.
"류 경위님, 그⋯⋯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갈해단 소재 확인되었습니다. 제 집에 있네요."
- 예?
"제 집에 있다고요."
- ⋯⋯두 분 무슨 사이십니까?
"저도 그걸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살아는 있으니까 세 분 다 얌전히 서에 계십시오. 퇴근을 하시든지. 허튼 짓 하지 말라고 일단 연락부터 했습니다."
- 일단 알겠습니다, 전달하겠습니다. 출근하시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통화를 끊자, 누가 말소리에 깼는지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윤이 형은 한번 잠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모르는데, 아마 저놈이 깼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갈해단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허리 쪽에 커다랗게 붕대를 감고, 머리와 팔을 비롯해 이곳저곳에 거즈를 덧댄 모습이었다. 꽤 큰일을 겪은 모양인데, 아, 졸려서 머리 안 돌아간다. 읽히는 게 하나도 없네. 그런데 왜 저놈이 여기 있냐, 정말. 편려원은 황당하다는 낯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갈해단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왜 여기 있습니까?"
"내가 할 말인데?"
"여기 내 집입니다. 당연히 내가 할 말이죠."
"그쪽 집이라고?"
"룸메거든요. 저 형이랑."
편려원이 여전히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는 윤 쪽으로 한발짝 다가섰다. 꼭 잠든 이를 보호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처음 보는 이를 경계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둘이 어떤 사이인지를 몰라도, 그는 윤을 무방비하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본디 인간은 다 그러한 존재 아닌가. 자신을 치료해 준 이도 개의치 않고 해할 수 있는 존재. 은혜도 모르고.
반면 갈해단은 그쪽으로 시선을 한번 준 것이 다였다. 곧 별 생각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손 댈 생각은 없다는 표현인 듯 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그를 믿으려고. 편려원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낯으로 인상을 한번 썼다. 아, 마음에 안 들어.
"연락은 왜 끊겼습니까?"
"그럴 만한 일이 있었으니까. 이 꼴 보면 모르냐."
"잠입 수사가 생각보다 빡빡하게 돌아갔던 모양입니다?"
"얘기했잖아, 그럴지도 모르니까 혼자 가겠다고."
"예, 뭐, 지금 그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긴 합니다만. 당신이 살아는 있으니 실패는 아니겠습니다만, 앞으로는 더 주의하셔야겠습니다. 그 꼴이 되어 올 줄은 몰랐네."
"함부로 들쑤셔서 그런 거잖냐, 뒤쪽에 있는 새끼가 눈치가 빨라. 앞으로는 그쪽으로 혼자 다니지 말고, 나도 이 꼴이 됐으니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편려원의 물음에 갈해단이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대타를 하게 됐는데, 하며 이어지는 말을 듣다 보니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제법 험한 일이 있긴 했네 싶었다. 그래도 당장 큰 손해를 볼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역시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겠고. 적당히 건진 것들을 어디까지 짜집기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는데.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나자 그제야 갈해단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어디 한쪽은 긁힌 것 같고. 저기는 근육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몸을 숙여서 피하려다 아래에서 찔렸겠네. 저쪽은 그냥 두면 좀 위험하겠는데, 움직이지 말라고 해도 안 듣겠지. 편려원은 뻑뻑한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떴다. 저놈이 윤이 형한테 아마 연락을 먼저 넣었겠지. 윤이 형이 상황을 알았을 리는 없으니까. 아마 연락 넣자마자 쓰러졌겠고. 대체 둘이 무슨 사이지.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를 지금 굳이 들쑤시고 싶지는 않았다. 대답 여하에 따라 총의 잠금 장치를 다시 풀고 싶어질 수도 모르니까. 그랬다가는 형이 깨겠지. 자고 있는 동거인을 이 시간에 깨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생각을 마무리하자마자 저 깊은 곳에서 통제 없는 불쾌함이 치솟았다. 윤이 썩 좋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이미 확인하지 않았나. 그를 캐묻고 싶은 게 아니다, 그 때문에 화가 치미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저놈과 제가 결국 똑같은 놈이라는 그것이, 그를 당장 제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 불쾌했다.
범죄자를 잡아처넣고 있다지만 저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모가지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보람찬 하루였다고 천진난만하게 떠벌릴 만큼 떳떳한 놈은 못 된다는 소리다. 그리하여 고개를 숙이고 수갑을 들었다. 제 한 몸이 어찌 되든 말든 눈에 불을 켜고 타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만 목숨을 태웠다. 적어도 무엇이 옳지 않은지를 알기 때문에, 오로지 그것만이 속죄가 될 것이기에. 하지만 그 방법마저도 옳지 않다며, 햇병아리들은 언제나 현실을 모르고 떠들어 댄다. 이 범죄자 놈은 그러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양 그 하나를 소모하고. 그 가운데에서 모든 놈들의 목줄을 틀어잡아야 하는 그는, 마치 모든 것의 책임만을 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두려웠다고. 줄이 쥐도 새도 모르게 줄어들어 버릴까 봐. 제가 틀렸다는 비웃음만을 남기고서.
아니, 제 방식이 틀릴 리가 없다. 어차피 현실은 이상을 품을 수 없다. 그 역시 제 모든 과거를 책임지기 위해, 그동안 놓쳐 버린 피해를 무엇 하나라도 더 주워담기 위해, 더는 저 같은 놈들이 생겨나지 않게 막기 위해 이곳에 서 있지 않은가. 닥치는 대로 범죄자와 사회를 격리하는 것도 결국 이상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가치를 모르고 칼부림만을 즐기는 것들은 어느 때에고 반드시 생겨난다. 그러니 전부 잡아 처벌하는 것만이, 더 큰 피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일 텐데. 이놈들은 그것도 모른다는 듯이, 그래, 꼭, 인간을 믿어보고 싶은 것처럼. 그리고 그에 불을 지피고야 마는 이놈까지도. 결국에는 너나 나나 똑같이,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새끼일 뿐인데. 바닥이 깊은 줄도 모르는 이상들이 쓸데없이 믿음을 걸어보고 싶게, 영영 바닥과의 거리는 알지 못 하는 채로, 언젠가는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처럼!
편려원이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잠들었다 생각했던 윤이 문득 손을 뻗어 수건을 쥐었다. 손가락에 간신히 걸쳐 있던 것이 그의 손 안으로 온전히 빨려 들어갔다. 더 입을 열었다가는 깨겠다 싶어 멈칫한 찰나, 갈해단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를 같이 발견한 모양이었다. 편려원이 더욱이 날을 세웠다.
"손 댈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안 한다고. 눕히기나 해, 쟤 방일 거 아냐."
갈해단이 슬슬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양새였으나, 자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건 아는지 그나마 애는 쓰는 듯 했다. 다친 곳이 아프기는 한지 큰 움직임은 조금 버거워 하는 듯 보였다. 편려원은 그에 한 마디를 하려다 관두고 다시 입을 닫았다. 굳이 제가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여전히 세상 모르고 잠든 윤을 일으켜 침대에 눕히자, 그제야 옆의 협탁에 놓인 약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갈해단에게 주려고 내어놨겠지. 다시 깊이 잠들었는지 수건을 쥔 채 조용히 숨소리만 내는 윤을 바라보던 편려원이 손을 뻗어 협탁의 약을 집어들었다. 사람이 기껏 준비했는데 주는 척이라도 해야 할 말이 있겠지. 보나마나 안 들고 갈 것 같지만. 방은 나중에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뒤로 하고 편려원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소리없이 닫자마자 편려원이 약 봉투를 갈해단에게 내밀었다. 아무 표정 없이 나갈 준비를 하던 갈해단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뭔데?"
"보면 모릅니까? 약 봉투지? 형이 챙겨뒀던 모양입니다, 들고 가십시오."
"됐어, 그런 거 없어도. 그만 간다."
"지금 그러고 가려고요? 뒤지는 게 취미입니까?"
"할 수 있다면 취미로 삼았겠지. 있다보면 나아, 급한 건 다 처리해줬고."
그러더니 갈해단은 정말 나갈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다 현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편려원은 그가 정말 그렇게 나갈 것을 알았다. 저놈은 굳이 빈말을 하는 놈이 아니니까. 건조한 시선이 갈해단의 등에 사정도 없이 꽂혔다. 차라리 그랬으면 편했겠지.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편려원은 만난 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은 이의 본질을 이미 알았다. 그러니 소섭도 저 나름대로의 흥미를 느꼈던 게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더라도 손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그 가치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으니까. 이제 제 패라고 말은 했으나 아마 그 역시 알겠지. 패라고 칭할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것이라 칭할 수는 없음을. 편려원도 그를 모르고서 말하지는 않았음에도.
결국 너와 나는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그런데 너와 나는 무엇이 다르길래.
너는 왜 너를 용서할 수 없고, 나는 왜 나를 용서할 수 없고. 그리하여 나는 왜 너를, 용서할 수, 없는가.
편려원은 신발을 대충 구겨신는 갈해단의 뒤로 느지막히 다가섰다. 구겨지는 신발 뒤축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가 하릴없이 팔짱을 꼈다. 그마저도 언짢다는 듯이.
"미안하진 않습니다."
"기대도 안 했어."
"하지만 아직 뒤지지는 마십시오."
"뭐?"
갈해단이 신발을 신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새삼스러운 소리를 한다는 표정이었다. 아, 진짜 저것도 마음에 안 드네. 편려원이 영 못마땅하다는 낯으로 그를 마주했다.
"당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는 모릅니다, 궁금하지도 않고. 허튼 짓이라도 했다가는 내 손에 죽을 걸 알 테니 굳이 그러지도 않을 거고."
"무슨 소리야, 또. 내가 왜 죽는데."
"그런데 내가 아직 그걸 못 이뤄준 것 같아서. 뭐, 그냥 그렇습니다. 이번 건이 끝나고 나면 죽어도 됩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냥 죽으라고 해라, 그 말이 그 말이잖아."
"다 끝난 뒤에는 알 바 아니라는 거죠. 마침 당신처럼 뒤지고 싶어서 환장하는 범죄자 새끼를 하나 아는데, 소개라도 시켜드립니까?"
"됐어."
갈해단이 음울하게 혹은 기운 없다는 듯 대꾸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은 해도 다친 곳이 불편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편려원이 문을 열어주며 무어라 더 말하려던 찰나였다. 그보다 빠르게 문을 나서며 갈해단이 중얼거렸다.
"그런 걸로는 안 죽어."
그리고 문이 닫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어 버린 현관을 바라보던 편려원이 느리게 눈을 끔박였다. 매몰차네, 아무래도 좋지만. 그래, 너와 나의 차이는 결국 그 하나다. 운이 좋았는지, 아닌지. 미안하지는 않았다. 안타깝지도 않고. 결국 그는 운이 좋았을 뿐이니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게슈탈트가 다시 밖으로 나와 발치에 꼬리를 감았다. 편려원은 허리를 숙여 게슈탈트의 머리를 몇 번 더 쓰다듬어 주었다. 고양이 테라피. 게슈탈트가 그르륵 하는 소리를 냈다. 뭐, 됐다, 그건 그거고. 이제 청소나 시작해볼까. 윤이 깨려면 한참 남았을 테다. 생각하니 엄청 바쁘네, 잠도 자야 하고, 그 뒤에는 어떻게 할지도 생각해야 하고, 햇병아리 놈들 목줄도 다시 잡아야 하고. 자고 일어나면 전에 봤던 잠발라야 레시피를 시도해볼까. 형도 배고플 테니까.
편려원이 다시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할 일이 많았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은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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