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단아 사랑한다. 너는 갓캐란다.
§ 다수의 날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퇴고 없음, 급전개와 맞춤법과 비문 주의.
§ 주의: 필터링 없는 날것의 욕설, 폭언, 유혈에 대한 묘사, 일부 범죄 미화, 폭력, 폭행, 부상 등
허여멀겋게 높이 떠오른 달이 칙칙하게 빛났다. 탁한 달빛이 컴컴한 바닥을 구석구석히도 쓸어냈다. 쓸려나간 어둠을 대신해 그 공간을 덩그러니 차지하고 앉은 빛줄기만이 퍽 적나라하게도 나락을 비추었다.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곳에 서 있었다. 어두침침한 골목이 마땅히도 남자를 반겼다. 그리하여 그가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부패한 냄새가 풍기는, 가장 질긴 것만이 삶을 거머쥐는, 가장 검은 것들이 위를 차지하는 거리. 남자는 그 위로 붉은 발자욱을 하나하나 남기며 걸었다. 남자의 얼굴에서 일정한 간격을 품으며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은 이 모든 것들이 차라리 눈에 익은 듯 했다. 혹은 그 모든 것이 이미 질렸거나.
남자의 삶이, 한 줄기의 붉은 물길이 되어 남자의 한 쪽 눈꺼풀 위를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남자는 자신이 숨쉬어 온 삶이 너무도 검어 한 쪽 눈을 뜨지 못 했다. 남자는 남아 있는 한 쪽 눈으로 달빛을 가늠해 발을 내딛었다. 마치 그것까지도 이미 보았다는 듯이. 그럼에도 이따금 남자는 이런 삶이 되려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본디 날 때부터 고독했던 존재. 칠흑 같은 어둠에서 태어난 까마귀보다 색 까만, 그림자와 빛의 경계선보다 일렁이기 쉬운, 모호하기에 도리어 변하지 않는 것. 그런 이상은 고작 타인에게 구원받는 삶에 안주할 수 없었다. 남자는 방랑자였다. 그에게 정착이란 팔랑거리는 종잇장에 써내려갈 수 있는 단어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는 머무른다는 개념을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아 그 가치에서 흔히도 등을 돌렸다.
문제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그러했다는 것일까.
헤쳐나가야만 하는 퍽퍽한 진흙과도 같은 길. 발을 디딜 때마다 지지 하나 없이 푹푹 빠지는 수렁과도 같은 삶. 남자는 주어진 생을 살아가고자 했으나, 언제나 긴 손가락을 뻗어 발목을 잡아끄는 것이 그의 생이라.
하나의 호흡은 끝을 맞을 때마다 실날 같은 매듭을 지었고 그 실의 끝은 항상 남자에게 묶였다. 제 호흡으로 칭칭 묶인 남자는 어디로도 갈 수 있었고,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호흡이 남겨놓은 숨구멍은 호흡의 실날에 대부분 막히거나 쓸려나갔다. 트이는 날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결단코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 아니었다.
남자는 삶을 숭배하지 않았다. 생은 반드시 거머쥐어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오롯이 그의 손 안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것. 그렇기에 절대 굽힐 수 없는, 그 누구에게도 안전하게 넘길 수 없는, 혼자만이 끊임없이 자아내야 하는 것. 어떻게든 이어가야 하는 것 안에서 남자는 홀로 이어지지 않은 채 남아왔다. 남자는 그 자체를 생이라 여겼고, 그에게는 그런 형태의 숨만이 자연스러웠기에 구태여 사회를 대단히 여기지 않았다. 물론 닿을 수 없는 것에 눈길이 간 적도 있었다. 남자는 그리하여 옳은 것으로 이어지는 이들을 꽤 높이 쳐주었으므로. 그러나 이어지지 않은 것은 타인의 손을 어찌해도 쉬이 잡을 수 없는 법. 남자는 바라볼 수는 있어도, 직접 손 안에 넣을 수는 없는 것에 익숙했다.
그래서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이런 때는 또 난감한 것이다. 남자는 눈앞에 불규칙하게도 나열된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남자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품평을 하고, 욕설을 뱉으며 손가락질을 하는 중이었다. 이 새끼들 존나 시비 터네, 이미 몸이 성한 곳이 없는 남자가 생각했다.
남자는 이 거리의 주기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저런 부류의 인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수라는 점 하나에 의존해 만용을 부리는, 달랑 개인 하나는 무슨 수를 써도 주체가 될 수 없을 객기들. 타인을 깎아내려야만 고지를 점령할 줄 아는, 그러나 정작 그 고지조차도 별 볼일 없는, 흔히 굴러다니는 싸구려 돌멩이 바닥 같은 인생들. 그들은 열기로만 이루어진다. 그 열병인지 염병인지를 홀로 감당하지 못 해 다툼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피가 흐르는 싸움터를 향해 제 발로 멀쩡히 기어들어간다. 시비를 걸고, 주먹을 휘두르고, 욕설을 한다. 그 과정과 결과에 뭐 대단한 열망이 깃들어 있지도 않다. 그 가운데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한때나마 얻어터지면서 뇌수를 끓일 만큼 가득 찬 열기를 식히면 그만이고.
남자는 그 역시 저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저렇게 흘러다니는 인생 중 하나. 어딘가에 좋은 일로 사용된다면 그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흔한 수 중 하나. 이렇게 엉망이 된 몸으로도 저들이 순순히 숨을 쉴 수 있도록 가만히 놓아두지만은 않으리라 마음 먹는 이상은 말이다.
그러나 이미 다른 것에 눈길을 준 적 있는 생은 다르다. 남자는 이미 그 삶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자신을 써먹을 수 있을, 좋은 일. 그를 이미 깨달은 이상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삶은 그 자신만의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그 사용의 필요성. 남자는 자신을 붙잡았던 손을 기억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내어주던 웬 열한 자리 숫자의 끝자락도 기억했다. 외우지 않는 게 좋았을 그 목소리까지도, 남자는 기억했다.
그리하여 남자는 평소와 다르게 대뜸 짓쳐들지 않고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주 짧은 고민이었다.
길지도 않았다. 숨을 두어 번 정도 쉬면 끝이 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에, 남자는 붉게도 휘날리는 머리칼을 보았다.
*
택할 수 없다면 적어도 달아났어야지.
그때 너는 내게서 달아나지 않았잖아. 그럼 너는 나를 선택한 거야.
*
남자는 단연코 한 번도 수동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제 것은 스스로 갈취하여야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는 법. 그런 이상은 모든 것을 스스로 움켜쥐어야만 했고, 모든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반드시 그렇게 흘러가야만 하는 순리. 거스를 수 없는 어떠한 흐름.
그러나 그 순간만은, 남자는 선택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것은 자유의 여신의 손에서 펄럭이는 붉은 깃발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생을 죄다 불 싸지르려 충동적으로 만든 횃불처럼 보이기도 했다.
혹은 아주 멀리서 불빛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방랑하는 이를 인도하는 등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남자는 귀를 때리는 고함을, 생을 울리는 비명과 진동을 분명히 들었다.
단언컨대 찰나였다. 한 순간의 충동이었다.
"아, 씨발, 이건 또 뭐야요. 안 그래도 씨발, 사탕 그만 처먹으라고 형한테 개같이 혼나서 기분 존나 씨발 개좆같은데, 개새끼들이."
그럼에도 남자는.
*
청년이었을까. 아니, 겉보기에는 소년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다. 제 앞길을 살펴 행하기보다는 당장의 충동을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한, 그런 철부지 장난꾸러기 말이다. 실제로도 그러할 삶을 살 것처럼 보이는 소년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존나 씨발 개별것도 아닌 잡놈새끼들이 몰려서 존나 씨발 개쌉염병하고 지랄이넹, 개좆밥놈들이. 아우, 힘들어."
하여간 사람이 그렇게, 어? 우르르 모여 가지고는 찌질하게 한 놈만 잡아다가 뒤지게 패면 안 되지, 개새끼들아! 너네는 내가 씨발 이렇게 욕을 존나게 처했지만 나중에 멍멍이들을 보면 존나 개씨발나게 사과하도록 하세용, 알겠어? 너희 같은 새끼들 때문에 멀쩡한 개들이 길 가다가 말구 지들 잘못도 아닌데 욕을 이의 이승 바가지로 처먹잖아, 그런 뜻 아니지만 어쨌든 개미친놈의 잡새끼들아! 내 말 알아듣냐? 왜 아무도 씨발 대답을 안 하시지, 아가리라는 걸 장식으로 처달고 계시는 게 아닐 텐데용, 이빨을 하수구마개로 처쓰고 자빠진 손놈들아? 그 뒤로도 잔소리인지 헛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욕이 몇 바가지 정도 더 끼얹어졌다. 욕을 들어줄 놈들은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갔거나 정말 정신이 나간 것들밖에 남지 않았으나, 정작 욕을 하는 놈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쉴새없이 욕설을 더하며 발길질을 야무지게도 이어갔다. 소년의 붉은 구두 아래에서 붉은 살덩이들이 붉다 못 해 검은 빛으로 물들었다.
"에이, 씨발, 안 그래도 한 시간 밖에 못 자서 피곤해 뒤지겠는데, 씨발 웬 듣보새끼들이 단체로 깔짝거리고 지랄이야."
한참 욕을 퍼부으며 발길질을 이어가던 소년은 한 마디에 포함된 욕설이 한 자리수로 줄어들 즈음에야 제대로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섰다. 이어졌던 주먹질 때문에 엉망이 된 제 머리를 빗어넘기려 애를 쓰던 소년은 몇 차례 버둥거리며 팔을 휘적거리다 결국 빠르게 포기하고는 몸을 돌렸다. 붉은 생이 이리저리 튄 소년의 얼굴이 그제야 남자의 방향과 일치해, 남자는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는 시야로도 고개를 들었다. 소년이 등장한 뒤로 있었던 그 난리 동안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소년의 얼굴을, 남자는 드디어 마주했다.
앳된 얼굴이었다. 그 위를 덮은 핏덩이들이 소년에게서 더욱 세월을 강탈하고 있었다. 남자가 제 나이로 보인 일이 잘 없던 것을 제하고도 소년은 남자의 또래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조금 더 어리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원래 그런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으니.
남자는 그 얼굴을 잊지 못 할 것처럼 바라보며 눈을 몇 번 끔박거렸다. 피가 말라붙은 자국을 따라 버석거리는 느낌이 혼연히 묻어났다. 아래로 떨어진 남자의 피는 붉은 실 같은 자국을 남기며 바닥 어드매로 흩어졌을 터였다. 그 바닥에는 붉은 실 같은 자국을 남겼을, 소년의 피도 있었을까.
남자는 흩어지는 정신을 따라 일어나는 생각들을 억지로 밀어넣었다. 어쩌다 저런 놈 하나가 혼자 설치게 둔 거지. 제대로 정신이 들지 않아서 그런가. 하필 상태가 좋지 않던 것이 악수惡手였다. 저놈은 그냥 놓아두는 게 좋기는 했는데. 그래도 역시 아까 너무 대놓고 받아주지는 말 걸 그랬나. 왜 도와준 거지. 도와준 건 맞나. 그보다, 저런 놈이 올 줄 알았으면 미리 조져놓기라도 하고 있을 것을. 그런 생각들을. 남자는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은 눈을 겨우 뜨며 소년을 주시했다. 어찌되었든 그 언제나, 거저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없는 법. 저 놈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이상 쉬이 정신을 놓을 수는 없었다. 소년이 자신을 구해준 꼴이 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마침 소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옆으로, 앞으로, 그러니, 남자의 눈앞에,
그리고,
소년은 남자를 보지도 못 한 것처럼 설렁설렁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이런 개싸움을 가장한 주먹질 이후에, 저토록 무관심한 대우를 받아본 일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남자가 쉬이 외면할 수 있을 수준의 사람도 아니었다. 남자는 한 번 문 것을 쉽게 놓아본 일이 없었고, 보통 그런 대우를 해주는 쪽이었으므로.
남자는 입을 열어 무어라 중얼거리며 소년을 부르려 했다. 그리고 소년이 뒤를 돌아 남자를 마주했다. 그가 자신을 부를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차례 얽혔다. 색이 다른 두 눈이 남자를 오롯하게 마주했다. 남자는 순간이나마 그 색을 외웠고, 소년은 남자의 존재를 외웠다.
먼저 말을 건 것은 소년이었다.
"아, 거기 너. 다 죽어가는 님아."
"……."
"나 여기 산책하러 자주 오거든용? 안 그래도 여기 존나 치우는 사람도 없어서 냄새 뒤지게 나는데, 괜히 시체 썩는 냄새 더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세용."
"……."
"내가 사회의 쓰레기들은 존나게 잘 치울 자신이 있는데, 송장 치우는 건 귀찮아서 맨날 그냥 태우거든? 그러고 또 씨발 형한테 뒤지게 혼이 나지, 쓸데없이 냄새 피운다고, 하, 씨발, 인생…… 하여간. 이 근처는 님 같은 사람이 계속 깔짝거리다가는 오늘처럼 모가지 날라가기 십상이니까는, 사후세계 빠른 등기로 끊어서 추가 요금 내실 거 아니면 다른 곳 알아봐라. 오늘 등기는 내가 착해서 우편 마감 대신 함 해줬다, 저딴 놈들보다는 네가 그래도 쪼끔 더 나은 거 같아서."
그러고는 할 말이 끝났는지, 소년은 손을 한 번 흔들고는 자리를 마저 벗어났다.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떠나는 괴상한 부류의 인간이었다, 물론 남자도 딱히 세간에서 정의하는 정상적인 부류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어떻게, 조금 더 기력이 있었다면 뭐라고 말이라도 붙여 소년을 붙잡았을 텐데. 남자는 미적미적 오래도 미뤄둔 한계가 결국 도래했음을 깨닫고 다시 입을 닫았다. 이제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소년이 사라질 때까지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는 일 뿐이었다.
비조차 내리지 않는데도 시야는 꼭 물안개가 낀 것만 같았다. 빗물이 고이지 않은 골목에 찰박거리는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울리는 듯 했다. 붉은 머리칼이 핏물처럼 흘러 내리는 모양새를 한, 그 소년의 등을 바라보던 남자가 이내 눈을 감았다. 이제는 정말 더 기력이 없었다.
운이 좋으면 이곳에서 죽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결단코 운이 좋은 날은 아니었으나, 마냥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아 남자는 그 운에 숨을 걸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더 움직일 힘도 없었다. 남자는 무언가에 순응하는 것처럼 숨을 쉬었다.
곧 일정한 숨소리만이 달빛과의 독대를 시작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이름을 물어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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